야생약초 이야기 제 244부


[< 전북 장수군농업기술센터 >]

장수군농업인대학 약초반

 

 

※ 2021년 9월 1일 수요일 제 2차 전북 장수군 농업기술센터 3층 강당 실내교육 기념사진입니다.

 

 

 

 

 

※ 전북 장수군청 마당에 서식하는 410년된 은행나무입니다.

 

 


 

 

[<<-누렇게 잘익은 은행으로 발효 음료수 만드는 법>>]

노랗게 익은 은행 열매는 냄새가 고약해서 맨손으로 잘못만지면 피부병을 일으키고 옻이 오르는 것처럼 은행열매의 옻이 올라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은행열매를 맨손으로 줍지 않고 고무장갑을 끼고 주워서 물속에서 과육을 벗긴다든가 또는 땅에 묻은 다음 종자를 둘러싼 과육이 다 썩은 다음 꺼내서 쓰거나 발로 밟아 비벼서 종자를 꺼내는 등 그 역겨운 냄새와 피부에 닿을까 겁이 나서 한 바탕 소동을 벌이기도 한다. 약리작용에서 은행열매의 과육에는
피부염을 일으키는 ginkgotoxin이 함유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피부가 벗겨지거나 만지면 아프거나 하는 피부 자극 증상을 일으키고 내복하면 소화 기관을 매우 강하게 자극한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고약한 은행 열매를 냄새가 전혀 없이 달콤하고 맛있는 음료수를 만드는 비결이 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리고 그 과육에는 놀라운 질병 치료 효능까지 듬북 들어 있다면 그래도 그 과육을 버릴 것입니까?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달콤하고 맛있는 황금색으로 잘익은 살아있는 은행을 가지고 발효음료를 만드는 비결을 소개합니다. 그 비결은 대단히 간단해서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아마 여러분은 놀라실 것입니다.

실제 약리작용에서 은행열매의 과육은 과피보다 항균력이 강하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또한 은행 과육은 먼옛날에 찧어서 첩포제(貼布劑)로 쓰면
발포 작용이 있어 수포를 일으키는 용도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가을에 은행나무에 열매가 노랗게 익었을 때 신선한 열매를 물에 씻지도 말고 꼭지도 떼지 말고 그대도 따서 옹기 항아리나 유리 항아리에 넣고 밀봉하여 뚜껑을 덮어놓고 3개월 지나서 뚜껑을 열어보면 은행열매의 과육에서 구린내가 나던 것이 포도송이에 하얗게 천연 효모가 있는 것처럼 싱싱한 은행열매의 표면에도 효모가 붙어 있어 저절로 발효가 잘되어 냄새가 전혀 없는 달콤한 추출액이 만들어 진다는 거짓말 같은 진실입니다.

참으로 놀랍기 그지 없습니다. 마산에 사는 모 약사모 회원은 이렇게 매년 살아있는 은행을 그대로 항아리에 담아 놓고 3개월 지나서 발효된 음료수를 하루 소주잔으로 조석으로 한잔씩 맛있게 즐기면서 고혈압, 협심증, 혈액순환, 폐결핵, 해수, 천식, 피부미용 등 다양한 질병에 효험을 보고 있다고 필자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실제 몇몇 회원들이 그대로 따라 해본 결과 모두가 한결같이 그 지독한 냄새는 모두 사라지고 맛있는 은행과육음료수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 감탄을 연발하고 있습니다. 은행을 사랑하는 모든분들에게 이 방법을 널리 전해서 질병도 예방 또는 치료하고 천연과육음료수도 즐길 수 있으며 과육을 모두 먹고 난후 은행씨앗은 별도로 꺼내어 구워서 먹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버릴 것이 전혀 없는 보배로운 황금열매가 바로 은행(銀杏)입니다. [민간요법 경험방]

[<<-누렇게 잘익은 은행으로 곶감 만드는 법>>]

해발 500m 이상의 산에 은행나무를 심어 놓으면 20~30년 정도 자라면 가을 즉 10월이 되면 암그루에서 열매가 열리기 시작한다. 누렇게 익은 열매가 산속에서 비바람을 맞고 가을에 저절로 떨어져 냄새가 진동을 한다.

하지만 익은 은행을 그대로 줍지 않고 놓아 두면 노랗고 통통하게 익은 열매가 햇볕을 쬐고 추운 겨울을 지나면서 수축되어 열매가 점차 황금색에서 갈색으로 변하면서 쭈글쭈글해진다.

은행과육에는 포도와 마찬가지로 열매껍질에 은백색의 흰가루가 붙어 있는데 이것이 열매를 발효시키면서 고약한 냄새를 달콤한 향기로 바꾸는 작용을 한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6개월이 지난 4~5월경에 떨어진 은행을 관찰해 보았는데 산속에서 자연 건조되어 냄새가 향기로우면서 꼬들꼬들하게 말라있는 모습이 마치 잘 말려 놓은 곶감같아 보였다.

맨손으로 만져도 독성도 없고 냄새도 향기롭고 그래서 먹고 싶은 충동이 생겨서 깨끗하게 잘 마른 은행 과육을 입에 넣고 사탕을 빨아 먹는 것처럼 먹어 보았는데 맛도 좋고 먹을 만 하였다.

식도에서 넘어가면서 조금의 자극은 있었지만 기분이 좋았다. 이 사실을 알 게 된 후로 5월경 은행 열매를 산속에서 주어다가 집에서 흙이 많이 묻은 것은 분리하여 과육을 까낸 다음 건조하여 은행을 까서 알맹이를 즉시 냉동실에 넣고 얼려 놓았다가 <7개에서 20개 사이:
식품안전처가 제시하는 은행 하루 섭취량은 성인 기준으로 10알이다. 어린이는 3알이다. 은행나무 열매에는 시안배당체(아미그달린, 부르니민)와 함께 메칠피리독신이라는 독성물질이 함유돼 있어 반드시 익혀먹어야 한다. 익혀 먹지 않거나 한 번에 많은 양을 먹을 경우 의식을 잃거나 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를 꺼내어 후라이팬에 참기름을 약간 치고 약한 가스렌지 불로 2~3분 정도 볶은 후 천일염 소금을 적당히 친 후 후라이팬에서 탁 탁 소리가 나면서 은행이 튀기 시작하면 꺼내어 먹는데 쫄깃하고 향기롭고 씹는 맛이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흙이 붙어 있지 않고 잘 마르고 깨끗한 과육이 붙은 은행은 항아리에 보관해 놓고 하루에 1알씩 아침에 일어나서 빈속에 곶감먹듯이 빨아 먹고 있다. 맛있는 과육을 빨아 먹고 나면 껍질이 든 은행이 나오는데 이것은 물에 담가놓았다가 씻어서 말려놓고 플라이어나 은행까는 도구로 까서 위의 동일한 방법으로 냉동고에 보관해 두었다가 언제든지 볶아서 먹으면 된다. 마치 꿩먹고 알먹듯이 은행 겉의 과육은 곶감으로 안에 속씨는 쫄깃한 은행으로 먹게 되어 은행을 주신 조물주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 [jdm 경험방]

[<<-누렇게 잘익은 은행으로 은행술 만드는 법>>]

가을철에 누렇게 잘 익은 은행을 꼭지 달린채로 물에 씻지 말고 담금주 유리병에 30도 넘은 담금주나 56도 되는 이과두주에 70퍼센트 은행 열매를 넣고 술을 가득 부은 후 밀봉해 놓는다. 이렇게 냉암소에서 잘 숙성되도록 7년을 보관해 두었다가 7년 뒤에 뚜껑을 열고 소주잔으로 은행 열매 과육주를 맛보게 되면 달콤한 향기와 함께 양주보다 더 맛이 좋은 훌륭한 은행 열매술을 맛볼 수 있다. [jdm 경험방]   

 

 



















 

 

오래살고 장수하는 은행나무 상세 효능: <<jdm 천연물질대사전: 은행나무 무엇인가?>> 

 

 

※ 1789년경에 편찬된 전라도 장수현 읍지, 지붕없는 박물관, 전북 동부 지역, 1500년전 화려함을 수놓은 장수가야입니다. 자료는 인터넷 구글 이미지 검색에서 가져왔습니다.

 



 


※ 아래에는 전라북도 장수군의 역사 소개입니다. 각종 문헌의 출처를 밝히고 게제합니다.

 

 

[<< 전라북도 장수군의 역사 소개 >>]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장수군(長水郡)>: <<장수군(長水郡):

인문지리, 행정지명:
 전라북도의 동부 중앙에 위치한 군.


[대동여지도 / 진안, 전주, 장수, 임실]

분야: 인문지리
유형: 행정지명
시대: 현대
성격: 군
위치: 전라북도 동부 중앙
면적: 533.28㎢
인구: 2만 3277명(2015년 현재)
행정구역: 1읍 6면 202행정리(73법정리)

[정의]


전라북도의 동부 중앙에 위치한 군.

[개관]


동쪽은 소백산맥을 넘어 경상남도 함양군과 거창군, 서쪽과 서북쪽은 진안군과 임실군, 남쪽은 남원시, 북쪽은 무주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7°22′∼127°42′, 북위 35°28′∼35°49′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533.28㎢이고, 인구는 2만 3277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6개 면, 202개 행정리(73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장수리에 있다.

[자연환경]


동부는 소백산맥의 서사면에 걸쳐 있고 서부는 노령산맥의 동사면에 해당되어 장수읍과 장계면 일대의 분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역이 산지이다. 따라서 무주·진안과 함께 전라북도의 동부산악권에 속한다.

기반암은 대부분 화강암질 편마암이지만 곳곳에 편마상화강암과 대보화강암도 나타난다. 장수읍과 장계면은 편마암류의 기반암을 소규모로 관입한 화강암의 심층풍화에 의해 발달한 금강 최상류의 산간분지로, 형태는 분지이지만 진안고원의 일부로 간주된다.

동쪽에는 소백산맥을 따라서 솟아 있는 시루봉(1,162m)·남덕유산(南德裕山, 1,507m)·기태봉(1,015m)·백운산(白雲山, 1,279m)·봉화산(峰火山, 920m) 등이 경상남도 함양군과 경계를 이룬다.

장계 동쪽의 육십령(六十嶺, 734m)은 소백산맥을 넘어 함양군과 연결하는 고개이다. 서쪽에는 천반산(天盤山, 647m)·성수산(聖壽山, 1,060m)·팔공산(八公山, 1,151m) 등이 솟아 있어 진안군과 경계를 이룬다.

그 밖에 깃대봉(930m)·백화산(白華山, 851m)·봉화산(烽火山, 786m)·장안산(長安山, 1,237m)·마봉산(馬峰山, 724m)·사두봉(蛇頭峰, 1,015m)·묘복산(猫伏山, 846m) 등의 높은 산들이 있다.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계는 대체로 장안산·수분령·팔공산을 잇는 선으로, 이 선을 경계로 해발 250m 정도인 섬진강 유역과 400∼500m인 장수분지의 고도차가 확연해지며 지형이 구분된다. 지형의 영향으로 수분령 남쪽의 섬진강 지류인 오수천 유역의 산서면과 요천 유역의 번암면은 인접한 장수읍보다 거리가 먼 남원시와 교류가 더욱 활발하다.

금강은 장수읍 수분리의 수분령(水分嶺, 530m)에서 발원하여 장수읍을 지나면서 북류하다가 장안산에서 발원한 장계천(長溪川)과 천천면에서 합류한다. 금강은 수량이 증가하면서 심하게 감입곡류하여 각각 진안군으로 흐른다.

수분령 남쪽은 섬진강 수계로 장안산 서쪽에서 발원한 용림천(龍林川)과 백운산에서 발원한 백운천(白雲川)이 번암면에서 합류하여 요천을 이루어 남원시로 흐른다. 이들 하천 연안을 따라 소규모의 평야가 발달해 있다.

연평균 기온 11℃, 1월 평균기온 -3℃, 8월 평균기온 24℃이며, 연 강수량은 1,300㎜로 남부내륙형 기후구에 속한다. 고원상의 산간분지가 많아 여름에는 서늘하며 겨울에는 춥고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이 많다.

[역사]


구석기·신석기시대의 유물·유적은 발견된 바 없으며, 청동기시대의 유물인 지석묘가 계내면 삼봉리, 계북면 양악리, 천천면 남양리 등지에서 발견된 점으로 보아 이 시기에는 어느 정도의 부족국가가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토로 우평현(雨坪縣)과 백해군(伯海郡)주 01)이 이 지방에 있었다. 특히, 이 지방은 신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방상 중요한 요충지였으며, 지금도 합미산성을 비롯한 많은 산성과 봉수대가 남아 있다.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키고 난 뒤부터 이 지방은 국방상 요충지로서의 기능을 잃고 한촌(寒村)이 되었다.

686년(신문왕 6) 우평현은 이웃 현인 진안현(鎭安縣)과 더불어 백해군의 영현(領縣)이 되어 완산주(完山州)의 관할이 되었다. 그 뒤 757년(경덕왕 16) 우평현이 고택현(高澤縣)으로, 백해군이 벽계군(壁溪郡)으로 각각 개칭되어 남원소경(南原小京)에 예속되었다. 830년(흥덕왕 5)에는 무염국사(無染國師)가 신광사(新光寺)를 창건하였다.

태조가 후백제를 멸망시킨 뒤 940년(태조 23) 고택현이 장천현(長川縣)으로, 벽계군이 벽계현으로 바뀌어 남원부에 영속되었으며, 강남도절도사(江南道節度使)의 통치하에 있었다. 995년(성종 14) 벽계현이 장계현(長溪縣)으로 개칭되었으며, 1108년(예종 3) 장천현은 장계현을 감무하였다.

1380년(우왕 6) 왜구가 김천·영동을 거쳐 장수지방을 유린할 때 이성계(李成桂)가 왜구의 뒤를 쫓아 추격하다가 장수읍 용계리에 머물 때 닭 우는 소리를 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사찰로는 팔성사(八聖寺)가 있으며, 특히 이 시대의 장수는 유배지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유배당한 많은 사람들이 그대로 이 지방에 안주하여 뒤에 학문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1407년(태종 7) 장수향교가 창건되었으며, 1413년 장천현이 장수현으로 개칭되고 장계현이 병합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당시 장수현의 호수는 320호, 인구는 812인이었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晋州城)을 함락시킨 게야무라[毛谷村六助]를 껴안고 남강(南江)에 몸을 던진 주논개(朱論介)가 1574년(선조 7) 이 곳에서 태어났다. 정유재란 때에는 육십령을 넘어오는 왜적을 맞아 싸우다 조억령(趙億齡) 등 60여 명이 전사하였다.

특히, 임진왜란을 당하여 자손교육의 필요성을 느낀 이 지방의 사족(士族)들은 흥학당(興學堂)을 세워 후세교육에 힘썼으며 이로 인해 과거합격자가 많이 배출되었다.

1879년(고종 16)에는 프랑스인 두세(Doucet,C.E.) 신부가 이 지방에 들어와 서학(西學)과 신문학(新文學)을 가르치면서 천주교를 전파하였다. 1894년 동학운동이 일어나자 이 지방에는 동학운동군의 기포(起包)가 있었으며, 접주(接主) 김학종(金學鍾)을 중심으로 이 운동에 참가하였다.

1895년 갑오개혁으로 지방관제가 개편됨에 따라 장수군으로 개칭되었고 9개 면을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7개 면을 관할하게 되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 지방에서는 3월 5일 장수장날을 기해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려 했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실패로 끝났다. 그 뒤 3월 23일 산서면(山西面)의 궐기를 시작으로 각 지방으로 확대되었다. 근대의 인물로는 경술국치 후 의병을 모집하여 덕유산 일대를 중심으로 의병활동을 전개한 문태서(文泰瑞)·박충실(朴忠實) 등을 비롯하여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인 백용성(白龍城)이 있다.

6·25전쟁으로 이 지방은 산간지대인 관계로 그리 많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러나 낙동강전선에서 패해 도망가던 공산군이 지리산과 덕유산으로 들어가 인근지역을 약탈함으로써 그 피해가 막심하였다. 1955년 패잔병을 완전히 소탕할 때까지 이 지방에서는 애국청년단과 학생들이 주동이 되어 치안대를 조직하여 군경을 도왔다.

그 뒤 전후 복구사업과 1970년 새마을운동으로 오늘날의 발전된 모습으로 일신하였다. 근래에 들어서는 담배와 약초 등을 재배하여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1970년 2월 26일 장수면에 대성(大成) 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79년 5월 1일 장수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93년11월 1일 계내면이 장계면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94년 12월 26일진안군 동향면 신송리의 일부가 장수군 계북면 임평리에, 장수군 산서면 사상리의 일부가 남원군에, 남원군 덕과면 용산리의 일부가 장수군에, 장수군 계북면 양악리의 일부가 무주군에, 무주군 안성면 공진리의 일부가 장수군에 각각 편입되었다. 1998년 12월장계면 송천리와 장계리간의 일부 경계조정이 있었다.

[유물·유적]


선사시대 유적으로는 장계면 삼봉리 노평(蘆坪)마을 앞에 있는 삼봉리북방식지석묘를 비롯하여, 계북면 양악리의 남방식지석묘, 천천면 남양리의 남방식 지석묘 등이 있다. 장계면·천천면 등지에서는 다수의 석관묘가 발견되었다.

산성으로는 장수읍 식천리와 대성리에 후백제의 견훤(甄萱)이 축성했다고 전해지는 것이 있다. 백제 중엽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합미성(合米城, 전라북도 기념물 제75호)과 방어산성(防禦山城)·사계산성(社桂山城)·사현산성(沙峴山城)·이산산성(耳山山城)이 있고, 계남면·천천면의 경계에 침령산성(砧嶺山城)이 있다.

봉수대(烽燧臺)로는 백제 국경의 초소인 침령산성의 전초기지로 이용된 명덕(明德)봉수대와, 명덕봉수를 받아 백제의 서울에 연락하는 중간 봉수인 법화(法華)봉수대를 비롯하여 장안(長安)봉수대·매봉[鷹峰]봉수대·사계(社桂)봉수대가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장수읍 팔공산의 팔성사(八聖寺)사리탑, 계북면 양악리의 장수양악탑(長水陽岳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1호)과 심방사(心防寺)석탑, 천천면 와룡리의 신광사(新光寺)삼층석탑과 신광사대웅전(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13호), 삼고리의 오층석탑, 산서면 마하리의 원흥석불입상(元興石佛立像,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41호)이 있다. 830년(흥덕왕 5) 무염국사가 창건되었고 840년(헌종 6) 현감 조능하(趙能夏)가 중수한 신광사를 비롯하여 팔성사·원흥사(元興寺)·심방사 등의 사찰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장수읍 장수리의 장수향교와 장수향교대성전(보물 제272호)과 정충복비(丁忠僕碑,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38호)가 있다. 서원과 사우로는 장수읍 선창리의 창계서원(滄溪書院,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36호), 산서면 학선리의 압계서원(鴨溪書院,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35호), 천천면 춘송리의 용암사(龍巖祠), 장계면 월강리의 월강사(月岡祠,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31호) 등이 있다.

정자로는 장계면 삼봉리에 자락정(自樂亭,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29호) 등이 있고, 고가옥으로는 번암면 노단리의 장재영가옥(張在英家屋,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21호)과 산서면 오산리의 권희문가옥(權希文家屋,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22호), 사계리의 정상윤가옥(丁相潤家屋,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19호) 등이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천천면 봉덕리의 느티나무(천연기념물 제396호)가 있으며, 노거수로는 논개가 어릴 때 심은 것이라고 전해지는 장수군청 앞에 있는 소나무와, 군청사 서쪽 도로변에 있는 수령 500년 된 은행나무가 있다.

이 밖의 문화재로는 산서면 오성리의 어필각(御筆閣), 번암면 노단리의 어서각(御書閣,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32호), 장계면 금곡리의 금남군정충신영정각(錦南君鄭忠臣影幀閣,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33호), 계남면 화음리의 화산사(華山祠,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34호)·수열비(樹烈碑,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40호), 장수읍 장수리의 논개사당(論介祠堂, 전라북도 기념물 제46호)·의암주논개사적비, 천천면 장판리의 타루비(墮淚碑), 산서면 오산리의 화산영당(華山影堂) 등이 있다.

[교육·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장수읍 장수리에 장수향교(長水鄕校)가 있다. 이 향교는 1407년(태종 7)에 창건되어 장수읍 선창리에 있다가 1686년(숙종 12) 지금의 장소로 이건되었다.

또 1695년(숙종 21)에 설립되어 황희(黃喜)·황수신(黃守身)·유호인(兪好仁)·강백진(康伯珍)·장응두(張應豆)를 배향하는 장수읍 선창리의 창계서원과 1789년(정조 13)산서면 학선리에 설립된 압계서원이 있다.

그 밖에 1818년(순조 18)에 천천면 춘송리에 설립된 용암서원(龍巖書院)이 있었으나 1868년 철폐되었다. 또한 초등교육을 담당하였던 계남면 화양리의 흥학당(興學堂), 궁양리의 근수루(近水樓), 산서면 하월리의 지금당(至今堂) 등의 서당이 있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12년에 장수공립보통학교가 개교하였으며 현재는 장수초등학교로 되었다. 이 군에는 광복 이전까지 중학교가 설치되지 않았다가 광복 이후 1949년 장수중학교가 개교하였으며 1959년 장수종합고등학교가 개교하여 1973년 장수고등학교로 개편되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8개교, 중학교 7개교, 고등학교 5개교가 있다.

주요 문화행사로는 매년 논개대제(論介大祭)가 열려 논개의 구국심을 되새긴다. 그 외에도 논개골산골문화축제와 한여름장안산도깨비축제도 열린다.

[민속]


이 고장에는 영등제(靈登祭)·깃절놀이·도신제·윷놀이·널뛰기·연날리기·쥐불놀이·그네뛰기 등 많은 세시풍속과 민속놀이가 전승되고 있다.

영등제는 음력 2월 초하루·초열흘·스무날에 행해진다. 저녁 무렵에 부엌 선반에 삼색의 베쪽을 매단 생솔가지를 올려놓고, 달래·냉이 등 햇나물과 밥, 정화수를 각각 한 그릇씩 차린 뒤 식구 수대로 소지(燒紙)를 올려 풍신(風神)인 영등할미에게 가내의 운수대통과 풍년을 기원한다.

7월 백중에는 장수읍내의 13개 마을이 연합하여 깃절놀이를 거행한다. 이 놀이는 농기를 세워놓고 제사를 지낸 뒤 서로 절을 교환하는 놀이인데, 농기는 영감기·부인기를 비롯하여 큰아들·작은 아들 순으로 되어 있다.

먼저 부부기가 맞절을 하고 나면 큰아들기부터 순서대로 부모기에 절을 하게 된다. 기의 순차는 제작연대순으로 정해진다. 아무리 오래되어도 기폭에 그려진 용(龍)의 두 눈이 손상되지 않으면 위엄을 유지하고, 그렇지 못하면 새로 기를 만들게 되어 막내아들기가 된다. 깃절놀이에는 마을단위의 풍물패가 따라다니며 절이 끝난 뒤에는 풍물을 울리고 논 다음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도신제(禱神祭)는 10월 초사흗날에 지낸다. 먼저 거름을 주지 않고 농사지은 깨끗한 쌀을 천룡당산에 모신 천룡단지와 방안에 모신 성주단지에 새로 넣는데, 이것을 ‘부득그릇간다.’고 한다. 단지 옆에는 짚을 열십자로 깔고 햇찹쌀로 만든 쇠머리찰떡(시루떡)을 시루째 놓은 다음 소지를 올리며 천룡·성주·삼신께 축수한다.

이 밖에도 아이들 놀이로 공치기·땅뺏기·술래잡기·꼬리잡기 등이 있다. 9월 9일에는 이 고장 출신인 논개의 생일을 기념하여 기념제전이 있는데 최근 군민의 날로 제정되어 더욱 성황을 이루고 있다.

이 고장에는 현재까지도 20여 개 마을이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천제(天祭)·중천제(中天祭)·동구제(洞口祭)·팥죽제·큰산제 등으로 명칭 또한 다양하다. 제일은 대개 정월 초사흗날이지만 마을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9월 9일에 행하는 곳도 있다.

신격은 거의 산신으로 당산할머니·당고(堂姑)할머니·당산할아버지 등으로 불리며, 제단은 당집이나 당산수(堂山樹)·조탑(造塔)으로 되어 있다. 조탑은 마을 앞에 30∼40㎝의 자연석을 쌓아올린 밑둘레 10m, 높이 2∼3m 가량의 누석단(累石壇)으로 정상에 40∼50㎝ 높이의 머릿돌[童子石]이 꽂혀 있다.

이 고장의 특이한 동제의 예로는 천천면 삼고리 삼장(三壯)마을의 팥죽제를 들 수 있다. 제일인 정월 초사흗날 밤 8시쯤이 되면 부녀자들은 풍물을 치며 마을돌기를 하면서 골목길에 팥죽을 뿌려 잡귀를 몰아내고, 횃불을 밝히며 마을 앞 할아버지 당산탑에 모인다.

이 조탑에 여러가지 제물과 팥죽을 차려놓고 절을 하고 소지를 올리며 제를 지내는데, 제가 끝나면 팥죽과 제물을 나누어 먹으며 풍물을 치며 논다.

[설화·민요]


이 고장에는 「상사(想思)버섯전설」·「형제바위전설」·「당집구렁이전설」 등의 설화가 전한다.

옛날 어느 마을에 글만 읽는 선비와 갱피(먹는 피)를 훑어 어렵게 생계를 꾸려나가는 아내가 살고 있었다. 아내는 결국 가난을 견디다 못해 남의 집 후처로 갔다. 그 뒤 선비는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고향 근처의 고을에 원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행차 도중에 원님은 후처로 가서도 갱피를 훑는 옛 아내와 마주치게 되었지만 이제는 엎질러진 물이 되어 그냥 지나쳐버렸고, 볏짚 지붕에 올라 멀어져가는 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내는 지붕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 뒤로 장마 뒤에 지붕의 볏짚에서 이상한 버섯이 피었는데, 이를 상사버섯이라 불렀다.

천천면 연평리신기마을 에는 큰 바위산이 있어 다음과 같은 유래담이 전해온다. 옛날 이 곳에 조금씩 자라는 이상한 바위가 둘 있었다. 백일이 지나 더 이상 자라지 않게 되면 이 곳이 서울이 된다는 소문이 나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날 새벽에 아낙네들이 우물물을 길러 왔다가 커가는 바위를 보고 바위가 커지고 있다고 고함을 지르자, 두 바위는 깜짝 놀라 자라는 것을 멈춤으로써 그만 서울이 되지 못하였다 한다. 이 바위를 형제바위라 하는데 봉황이 날아와 살았다 하여 봉황대라고도 한다.

또한 신기마을에는 당집에 얽힌 「당집구렁이전설」이 전해온다. 언제인가 마을에 있는 작은 산이 큰 수탉으로 변하여 이 곳을 지나는 사람들을 무조건 잡아먹을 뿐 아니라 곡식까지도 빼앗아 먹는 것이었다. 그러자 마을사람들은 어떤 중의 지시로 한 달에 한 번씩 처녀를 제물로 바치고 제사를 지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동네 당집에 살던 암쿠렁이가 수탉과 싸워 함께 죽어서 산이 되었다. 그 뒤로 마을은 무사하였고, 사람들은 구렁이를 고맙게 여겨 당집을 새로 짓고 매년 그 넋을 위로하는 제를 지내게 되었다.

이 밖에도 길이 험하여 100여 명씩 짝을 지어 넘었다는 「백제고개전설」, 효성스런 현감을 도깨비와 호랑이가 도와주었다는 「관청바위전설」, 고려시대의 고승 나옹(懶翁)이 도적들을 바위로 변하게 하였다는 「도적바위전설」, 용이 매어둔 소를 잡아다 먹었다는 「용소전설」, 시어머니의 구박과 모함에 아내가 빠져 죽자 남편도 같이 빠져 죽었다는 「서방소와 각씨소 전설」 등이 전한다.

이 고장은 덕유산 줄기에 맞닿아 있는 산간지방인 까닭에 「산채캐는 노래」·「나무꾼노래」·「목화따는 노래」·「나물뜯는 노래」·「길쌈노래」 등이 성하다. 또한 밭농사가 중심이 되는 이유로 하여 「밭매는 노래」가 많이 불리고 있다. 계북면·산서면 등지에서는 논농사와 관련된 「모찌는 노래」·「모심는 노래」·「논매는 노래」 등도 들을 수 있다.

이 고장의 특이한 민요인 「음두꺼비노래」(혼자노래)는 신랑과 신부의 교환창 형식의 노래이다. 내용은 계모 슬하의 처녀를 신부로 맞이한 총각이 신부가 음두꺼비같이 생겼다는 계모의 말을 믿고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나 알고 보니 절세미인으로 날새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신부)어제오신 저신랑은 잠만자러 오셨는가/(신랑)금삼(錦衫) 밑의 음두껍아 말이나말고 누었거라/(신부)들고보소 들고보소 한삼소매 들고보소/(신랑)한삼소매 들고보니 논두럭에 모마꽃은/먼지나 종종 앉으련만/닭아닭아 우지마라 흰싸래기 받아두마/개야개야 짖지마라 받은밥상 돌려주마.”와 같다.

「길쌈노래」는 「삼삼는 노래」·「삼잣는 노래」·「베짜는 노래」로 나눌 수 있다. 이 「길쌈노래」는 밤을 새워 노동을 할 때, 무료함과 졸음을 쫓고 노동을 즐겁게 하기 위해 불렀다. “아가아가 우지마라/이삼삼아 옷해입고/팔도강산 귀경가세/잠아잠아 오지말게/이삼가리 다삼우고/임의품에 잠들러가세…….”와 같다.

「산채캐는 노래」는 “멀구다래 썩는 물은 골골마다 흐르는데/우리부모 썩는 물은 어느골로 흐르는가/오늘해라 다져가고 골골마다 연기난데/우리님은 어데가고 연기낼줄 모르는가.”와 같이 부모와 임을 그리는 내용이다. 「논매는 노래」는 “에에야 에흐 방게로다/장수 원님은 곤달루쌈/남원 원님은 해우쌈/…….”과 같다.

이 밖에도 「궐마성노래」(가마메는 노래)·「그네뛰는 노래」·「들노래」·「자장가」·「상여노래」 등이 불리고 있다.

[산업·교통]


농가인구가 군 전체 인구의 44.7%를 차지하는 농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보이지만, 산간지대에 속해 경지면적이 7,226㏊로 13.5%의 낮은 경지율을 보인다. 논이 3,470㏊이고 밭은 3,756㏊이다.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도시로 전출하는 인구의 비율이 높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메밀·고구마·감자 등으로 쌀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고추·마늘도 많이 재배된다. 한랭한 고원기후를 이용하여 무·배추·사과·잎담배·인삼 등도 많이 재배된다.

무·배추 등의 고랭지채소는 고도가 낮은 산서면을 제외한 장수읍 등 전 지역에서 많이 재배된다. 인삼은 번암면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재배되며, 잎담배 재배도 증가하고 있다.

과거에는 기술부족으로 질 좋은 사과를 생산하지 못했으나 현재는 질 좋은 ‘장수사과’가 많이 생산된다. 근래에는 장수읍을 중심으로 사과의 재배면적이 눈에 띄게 큰 증가를 보이고 있다. 감나무가 많아 감의 생산량도 많은데, 특히 번암감은 예로부터 유명하다. 오미자·당귀·두충·작약 등의 약용작물 재배도 활발하다.

최근에는 농업구조개편에 대응하여 동양란 개화 촉진 사업 등도 행해지고 있다. 양잠 농가는 크게 줄었지만 아직도 약간 행해지고 있다. 산지를 이용한 축산업이 활발하며, 최근에는 가구당 사육 규모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축산업이 활발하여 한우·돼지·산양·닭·사슴·젖소·개·말·토끼·오리 등 다양한 가축들이 많이 사육되고 있다. 번암면에서는 꿀벌 사육이 활발하다.

임야가 전체의 약 75.09%를 차지하여 밤·호두·잣·은행과 버섯·약초·산나물 등의 임산물이 많이 생산된다. 덕유산 기슭에서는 자연산 송이버섯·약초·산나물 등이 많이 채취된다.

광공업은 미비하다. 광물은 번암면·장계리 등에서 석회석 등이 약간 생산된다. 산간지대의 불리한 입지조건으로 공업은 낙후되어 있다. 공업은 농촌 공업화사업으로 1990년에 천천면에 천천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약간의 공장이 입주했으나 거의 모든 업체가 영세한 소기업이다. 2004년 12월에 장계면의 금덕·송천 일원에 장계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적극적인 기업유치 및 지원활동을 전개하였다. 기존의 천천농공단지와 더불어 군의 공업발전을 이끌고 있다.

시장분포 현황을 보면 장수장·장계장·번암장·산서장 등 4개소의 정기시장이 개설된다. 5·10일에 개설되는 장수장과 3·8일에 장계장은 한약재와 약초의 거래가 활발하다. 면 소재지인 장계면은 장수읍에 비해 상업기능이 뒤지지 않는다.

장계면은 전주·무주·남원과 경상남도 거창 등지로 통하는 국도가 교차하는 교통의 요지로 상업과 서비스업이 발달하여 무진장지방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다. 산서장은 2·7일에, 번암장은 1·6일에 개설되며, 농산물과 일용필수품이 거래된다. 지형적 요인으로 산서와 번암은 각각 인접한 임실군 오수면과 남원시와의 거래가 활발하다.

특산물로는 팔공산 부근 등지에서 생산되는 검푸른 색의 각섬석편마암을 가공하여 만든 곱돌그릇이 있다. 전국적으로 ‘장수곱돌그릇’으로 유명하며, 장수읍과 번암면에는 이들 석기를 생산하는 업체들이 있다.

교통은 광주대구고속도로가 군의 남쪽 끝을 지나면서 영·호남을 연결하고 있다. 군의 북동부에는 장계면을 지나 경부고속도로와 남해고속도로에 연결되는 통영대전고속도로의 완공으로 그 동안 불편했던 중부지방 및 남부지방과의 교통이 크게 개선되었다.

전주∼함양간의 국도가 군의 북부에서 동서로 지나고, 남원∼무주간의 국도가 군의 중앙을 남북으로 관통하며 이 두 도로는 장계면 장계리에서 교차한다.

따라서 장계는 동부산간지방의 교통의 요지로 상업·서비스업이 성장하였다. 전주∼함양간의 국도는 육십령을 통해 소백산맥을 통과하는데 겨울철에는 눈이 많아 교통에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 밖에 군의 남부에는 산서면을 통과하여 장수읍과 임실군 오수면을 연결하는 지방도가 있다. 대체로 지형이 험하고, 겨울철에는 눈이 많아 교통이 불편한 편이다.

[관광]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양대산맥의 산악지대에 위치한 이 군은, 장안산(1,237m)을 비롯하여 백운산·팔공산·덕유산 등의 명산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심산유곡의 기암괴석과 폭포·소(沼)·수목과 명경지수가 한데 어우러지는 천혜의 자연경관과 도처에 유서 깊은 문화유적들이 많아 휴양지와 자연답사를 위한 여행코스와 관광명소들을 보유하고 있다.

장수읍내에는 장수향교와 논개의 의암사당이 있어 관광객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장수읍에서 장계면과 계남면에 걸쳐 있는 장안산지역에는 장안산 주봉을 중심으로 사자봉·깃대봉·무룡궁·덕산 등의 주요 산봉에 대한 등산로와 장안산계곡·덕산계곡 등의 크고 작은 계곡들, 그리고 폭포·소·반석 등의 기암괴석과 약수터 등이 있어서 자연경관 및 울창한 숲과 어울려 절경을 이룬다. 여름철에는 이들 계곡을 찾는 관광객과 휴양객들이 많이 모여든다. 계곡을 따라 취사장·주차장 등이 시설되어 있다.

장수읍 서쪽에 있는 팔공산의 울창한 숲과 평원은 한 여름철의 좋은 휴양지가 된다. 번암면의 백운산도 울창한 원시림과 절경을 자랑하는 지지계곡(知止溪谷)으로 유명하다. 방화동에는 국민관광지인 방갈로를 비롯한 숙박·취사시설이 정비되어 있어 좋은 휴양지가 되고 있다. 계곡을 따라 산책로가 나 있다.

장계에서 경상남도의 안의(安義)에 이르는 육십령고개와 안의계곡 또한 유서깊은 휴양지이다. 북덕유산의 무주구천동과 이어지는 남덕유산의 토옥동계곡은 매우 경치가 빼어난 계곡이다. 덕산용소·비악폭포·서방쏘·각시쏘·천천봉황대 등 경승지도 이 군에서 자랑하는 경승지이다.

예로부터 선조들은 ‘장수팔경’을 노래해 왔는데, 이는 이 지역의 아름다움을 모두 노래하고 있다. 노평낙안(蘆坪落雁), 유천표모(柚川漂母), 매산청풍(梅山淸風), 송탄어적(松灘漁笛), 용추만풍(龍湫晩楓), 단평비폭(丹坪飛瀑), 반계은린(磻溪銀鱗), 영산영월(靈山迎月)이라 노래하여 이 지방의 산과 계곡에 얽힌 아름다움과 단아한 정서를 담고 있다.

장수군에 있는 산간계곡의 경승지들은 그동안 연계관광지로 개발하려는 계획이 부진하고 워낙 내륙의 산간에 위치한 경승지들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홍보가 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군에서는 현재 남원·전주·무주·함양 등지에서 장수군의 주요 관광지로 이동할 수 있는 다양한 코스의 테마관광을 개발하여 홍보하고 있다.

[읍·면]


1. 장수읍(長水邑)


군의 중앙에 있는 읍. 면적 101.78㎢, 인구 7,565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장수리이다. 본래 장계군 지역으로 고려시대에는 장수현으로 남원부에 속하였다.

1895년 수내면과 수남면으로 나누어졌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두 면이 합병되어 장수면이 되었다. 1970년 대성리에 대성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79년에 읍으로 승격되어 장수읍이 되었다.

분지형태를 가진 고장으로 남동부에 장안산, 서부에 팔공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읍의 중앙을 천천(天川)이 흐르고 있다. 수분리의 높이 480m 지점이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계(分水界)가 된다. 편마암과 화강암이 심층풍화되어 산간분지가 높이 400∼500m 위에 넓게 발달하고 주변은 700∼1000m의 산지로 둘러싸여 읍은 고원상분지를 형성하고 있다.

개정리에는 단상지(段狀地)가 발달하여 분지발달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겨울에는 적설량이 많고 기온이 낮아서 고랭지의 하나이다. 농업이 주산업이고 쌀·보리 등의 주곡작물과 담배·고랭지채소의 생산이 많아 서울 등 대도시의 시장에 출하한다. 대성리 필덕마을 같은 높이 600m의 고원에서는 축산업이 발달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석재를 원료로 대성리·장수리에서는 곱돌그릇·석등·돌조각·술병·술잔 등 석기조각품의 생산이 특산물로 생산되고 있다.

교통은 전주∼무주간의 국도와 천천∼임실, 장수∼진안, 장수∼남원으로 통하는 교통이 발달하여 무진장지구의 교통과 상업중심지로 상권을 장악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장수리의 장수향교와 정충복비, 선창리의 창계서원, 장수리의 주논개 생향수명비, 대성리의 합미성 등이 있다. 명승지로는 덕산리의 덕산용소가 있다.

장수(長水)·노하(路下)·선창(先昌)·노곡(蘆谷)·동촌(東村)·덕산(德山)·두산(斗山)·개정(開亭)·수분(水分)·송천(松川)·용계(龍溪)·대성(大成)·식천(食川) 등 13개 리가 있다.

2. 계남면(溪南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50.26㎢, 인구 2,32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화음리이다. 본래 고려시대의 장수현으로 남원부에 속해있다가 1895년 임남면(任南面)으로 불렸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계서면 무농리 일부가 병합되어 계남면으로 불렸다.

금강 상류인 천천변에 좁은 평야가 있을 뿐 대부분 높이 400m이상의 소백산맥으로 산지이다. 농업이 주산업이고 쌀·보리·담배·들깨·참깨·고추 등의 생산이 많고, 고랭지 채소재배가 행해지고 있다.

교통은 남원∼무주간의 국도가 지난다. 문화유적은 화양리의 홍학당, 화음리의 수열비 등이 있다. 화음(華陰)·침곡(砧谷)·신전(新田)·화양(華陽)·호덕(好德)·가곡(佳谷)·궁양(弓陽)·장안(長安) 등 8개 리가 있다.

3. 계북면(溪北面)


군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55.88㎢, 인구 1,60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어전리이다. 본래 장계군 지역인데, 1413년 장수현에 편입되어 임북면(任北面)이 되었다가 1895년 계북면으로 고쳐져 월전(月田) 등 17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용담군 이동면 신풍리 일부와 무주군 일안면 마암리 일부가 병합되어 월현·매계·농소·어전 등 7개 리로 개편된 것을 관할하게 되었다.

동부에 남덕유산이 있어 덕유산국립공원의 일부에 속한다. 여기에서 구리향천이 발원하여 금강 상류가 된다. 양악리 북부의 무주군 안성면과의 경계에 400∼500m 높이의 산록경사면이 발달하고 있다. 농업이 주업이고 쌀·보리 외에도 담배·표고버섯·인삼·약초 등이 재배되고 양봉업과 고랭지채소 재배도 성하다.

교통은 남원∼무주간의 도로가 있다. 문화유적은 양악리에 장수양악탑과 용연정이 있다. 어전(於田)·월현(月峴)·매계(梅溪)·농소(農所)·임평(林坪)·원촌(院村)·양악(陽岳) 등 7개 리가 있다.

4. 번암면(蟠巖面)


군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126.08㎢, 인구 2,49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노단리이다. 본래 고려시대의 장수현 지역으로 남원부에 속하였다. 1895년 장수군으로 편입되면서 상번암·중번암·하번암으로 나뉘어졌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들이 통합되어 번암면이 되었다.

동서남북에 백운산·장안산·상서산(627m) 등이 둘러싸고 있고, 동북부의 백운산이 섬진강과 진주 남강의 분수계가 된다. 섬진강 상류 주변에 200∼300m의 평지가 있을 뿐 대부분 산지이다. 백운산·장안산에서 발원한 요천(蓼川)이 면의 중앙을 흐른다.

농업이 주산업이고 주곡작물 이외에 감·밤·약초·고랭지채소의 생산이 많다. 산간에서 양봉업도 많이 행해지고 있다. 장안산계곡과 백운산계곡의 방화동은 피서휴양지로 유명하다. 번암온천장이 개발되어 있다.

교통은 광주대구고속도로가 면의 남단을 통과하고, 남원∼무주간의 국도가 남서부를 장수∼남원간의 국도가 지나며, 노단리에서 섬진강을 따라 군도가 지난다. 문화유적은 노단리의 어서각중 반계정, 국포리의 정종목 효자각 등이 있다.

노단(魯檀)·교동(橋洞)·국포(菊圃)·죽산(竹山)·사암(紗巖)·지지(知止)·동화(洞花)·죽림(竹林)·논곡(論谷)·대론(大論)·유정(柳亭) 등 11개 리가 있다.

5. 산서면(山西面)


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47.73㎢, 인구 2,40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동화리이다. 본래 고려시대의 장수현 지역으로 남원부에 속하였으며, 1895년 신서면(身西面)이라고 불리다가 수서면(水西面)으로 개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서면으로 개칭되었다.

노령산맥과 소백산맥 사이에 있는 내륙분지로서, 오수·남원·운봉을 잇는 삼각형모양의 대보화강암을 기반암으로 하고 있다. 경작지가 비옥하고 야산지대가 많아 개간의 여지가 많고 군내 제일의 곡창지대를 이룬다. 농업이 주산업이고 축산업도 발달하여 있다.

교통은 산서∼백운, 오성∼국포간에 군도와 순창∼동향간, 동화∼성수간의 지방도가 지난다. 문화유적으로는 학선리의 압계서원, 마하리의 원흥석불입상, 오산리의 권희문가옥, 사계리의 정상윤가옥 등이 있다.

동화(桐花)·오성(五聖)·쌍계(雙溪)·사계(社桂)·봉서(鳳棲)·사상(社上)·하월(下月)·이룡(二龍)·신창(新昌)·오산(五山)·건지(乾芝)·마하(馬下)·백운(白雲)·학선(鶴仙) 등 14개 리가 있다.

6. 장계면(長溪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67.56㎢, 인구 4,64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장계리이다. 본래 고려시대의 장계현의 지역으로 남원부에 속하였다. 1413년 장수현과 통합되어 장수군에 속하여 임현내면(任縣內面)이 되었다.

1895년 계동과 계서로 갈라졌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계동면·계서면이 통합되어 계내면으로 되었다가 1993년 지금의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동부에 깃대봉 등 1000m 높이의 산지가 있고 이들 산지에 육십령이 있어 경상남도 거창과의 교통로가 된다. 산간분지로 천천변에 한들(大野)과 같은 넓은 들을 가지고 있으며 토지도 비옥하다. 산간에 이런 넓은 들이 있을까 할 정도이다. 농업이 주업이고 쌀·보리가 생산되며, 주변 산지에서는 양봉·축산업·고랭지채소 재배가 행해진다.

교통은 전주·진안·무주간의 국도, 진안∼거창, 남원∼무주를 연결하는 도로가 교차하여 장계리는 무진장지구(茂鎭長)의 교통·상업중심지의 역할을 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월강리의 월강사, 금곡리의 금남군영정각, 송천리의 도암서원 등이 있다.

장계(長溪)·금곡(金谷)·무농(務農)·금덕(錦德)·송천(松泉)·월강(月岡)·삼봉(三峰)·명덕(明德)·오동(梧洞)·대곡(大谷) 등 10개 리가 있다.

7. 천천면(天川面)


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84.00㎢, 인구 2,22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봉덕리이다. 본래 고려시대의 장수현 지역으로 남원부에 귀속되어 신북면(身北面)이라 불리다가, 1895년 수북면(水北面)으로 바뀌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천천면으로 개칭되었다.

동부의 천천변에 높이 350∼400m의 평지가 있을 뿐 대부분이 화강암질 편마암으로 된 500∼1,000m의 산지로 구성되어 있다. 농업이 주산업으로 쌀·보리 이외에 고추·무·배추 등의 고랭지채소와 담배가 재배된다. 산간산록에서 축산업도 발달되어 있다.

교통은 전주·진안·거창간의 국도가 면의 중앙을 지난다. 문화유적은 와룡리의 신광사, 장판리의 타루비, 연곡리의 귀후제(歸厚齊), 연평리의 봉화대 등이 있다. 춘송(春松)·장판(壯板)·월곡(月谷)·와룡(臥龍)·남양(南陽)·삼고(三顧)·봉덕(鳳德)·용광(龍光)·오봉(五峰)·연평(蓮坪) 등 10개 리가 있다.

천천면의 <흥부와 놀부>의 유래 바로 가기: << 흥부와 놀부 무엇인가? >>

참고:  제비의 효능 바로 가기: << 제비(가연) 무엇인가? >>

[참고문헌]

1, 삼국사기(三國史記)
2, 고려사(高麗史)
3,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4,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5, 대동지지(大東地志)
6, 『지방행정구역요람(행정자치부,2003)
7, 『 지방행정구역연감(한국도시행정연구소,2003)
8, 『한국지방자치백서(한국언론인협회,2002)
9, 『지방행정구역요람(행정자치부,2000)『
10, 『한국관광자원총람(한국관광공사,1985)
11, 『내고장 전북의 뿌리(전라북도,1984)
12, 『한국지명요람(건설부국립지리원,1983)
13,『삼절의 고장』(장수군,1982)
14, 『전라북도지』(전라북도지편찬위원회,1969)
15, 전라북도 (www.jeonbuk.go.kr)
16, 통계청(nso.go.kr)
17, 장수군 (www.jangsu.go.kr)

[주석]


주01, 장계면 일대

[집필자]


박동원|이영화

개정(2009년)

이영화(동국대학교).
>>

2
-<월간산 470호 2008-12>: <<시솔길을 함께 걸어보실까요?

시와 함께 떠나는 여행은 인생을 윤택하고 풍요롭게 합니다.

내용출처:
https://blog.daum.net/nam-sh0302/15708086

전북 장수, 논개의 기개 빛나는 고을

국내여행기 및 정보/- 전라북도

2008.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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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장수

논개의 기개 빛나는 고을

- ‘2덕(德), 3절(節), 5의(義)'의 고장

민 병 준

▲ 백두대간과 금남호남정맥을 끼고 터를 잡은 장수의 산하는 높고도 깊다.

겨울의 들머리. ‘물이 긴 고을’ 장수(長水)로 간다. 장수의 산하는 심원하다. 산줄기가 끝없이 첩첩 이어진 강원도 땅과 얼핏 비슷해 보이는 풍광이지만, 강원도의 그것에 비해 한결 부드럽다.

무진장-. 전라북도 동부 산간 고지대에 있는 무주·진안·장수 세 고을을 이렇게 일컫는다. 이 산간 고지대는 기후는 물론이요, 언어도 전라북도의 여느 고을과는 조금 다르다. 해발고도가 높기 때문인데, 장수읍의 해발은 약 400m 정도 된다. 무주읍이 200m요, 진안읍이 300m이니, 장수는 무진장 고원에서도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고을임을 알 수 있다. 사실, 이 정도면 우리나라에서도 꽤 위쪽에 있는 편이다. ‘해피 700m’임을 내세우는 강원도 평창 역시 대관령면을 포함한 전체 평균고도가 그렇다는 말이고, 중심지인 평창읍 소재지는 해발 300m가 조금 넘을 뿐이다.

장수 지역만 답사할 목적으로 접근할 경우 수도권에서 내려오는 이들은 대부분 장수를 북쪽부터 훑어보게 된다. 지금은 중부고속도로에 포함된 구 대전-통영간 고속도로의 덕유산 나들목을 나와 19번 국도를 타고 가면 곧 장수 고을 계북면에 들어서게 된다. 이 고속도로가 없었더라면 장수까지 이렇게 수월하게 접근하진 못했으리라. 예전처럼 대전에서 경부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금산·무주를 거쳐 왔으면 시간 반은 더 걸렸을 터.

장수 고을로 들어서자마자 양악리 입구 도로변에서 동쪽의 남덕유산 기슭으로 들어간다. 전북 의병들의 근거지였던 토옥동계곡 가는 길이기도 한 이곳 길가엔 정인승기념관을 알리는 팻말이 보인다. 예전엔 동쪽의 남덕유를 올려다보며 그냥 지나치던 곳인데, 한글학자 정인승 박사를 기리는 기념관이 2005년에 들어선 뒤 방문객들의 발길이 조금 잦아졌다.

정인승 박사는 장수를 빛낸 열 분의 인물 중 한 분이다. 이참에 장수를 빛낸 인물부터 먼저 짚어보자. 장수에서는 ‘2덕(德), 3절(節), 5의(義)’라 하여 열 분을 ‘장수를 빛낸 인물’로 꼽는다. 예전엔 ‘3절’만 내세웠는데, 이후 장수의 역사적 인물을 새롭게 재조명하면서 ‘2덕’과 ‘5의’가 추가되었다. 그만큼 장수와 관련된 인물들이 많다는 뜻이겠다.

열 분의 이력을 간단히 들춰보면, 먼저 2덕은 방촌(尨村) 황희(黃喜·1363-1452)와 정신재(靜愼齋) 백장(白莊·1342-1418)을 말한다. 조선 역사를 통틀어 가장 명망 있는 정승으로 칭송받고 있는 황희는 이곳 장수 출신이다. 장수읍 선창리의 창계서원은 황희 정승을 주벽으로 모시고 있다.

고려 말 포은 정몽주에게 학문을 익힌 백장은 삼은(三隱)에 버금가는 성리학자로 알려져 있다. 고려가 망하자 치악산에서 은거하며 학문에만 열중하였다. 조선을 세운 태조와 태종이 그를 집현전 대제학으로 불러들였으나 응하지 않자 장계면 삼봉리로 유배를 보냈다. 장계면 금덕리 호덕 마을에 그의 묘소가 있다.


▲ 계북면과 장계면의 경계인 집재 고갯마루에서 내려다본 장계 분지. 장계는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장수와 독립된 하나의 현이었다. / 고을 현감을 모시고가다 현감이 말에 떨어져 죽자 자신도 같이 목숨을 버린 순의리 백씨를 기리는 타루공원.

이제 오래 전부터 장수의 자부심을 빛내던 3절을 알아볼 차례. 3절은 의암 주논개(朱論介·1574-1593)가 중심에 우뚝 서있고, 충복(忠僕) 정경손(鄭敬孫), 순의리(殉義吏) 백씨(白氏)가 뒤를 잇는다.

‘충절의 여신’으로 추앙 받는 주논개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코흘리개도 알고 있는 인물. 장수가 고향이라 이후에 들를 논개사당이나 논개생가에서 할 이야기가 많다. 정경손은 임진왜란 당시 목숨을 걸고 장수향교를 지킨 인물이고, 백씨는 고을 현감을 모시고가다 현감이 말에 떨어져 죽자 자신도 같이 목숨을 버린 인물로서 타루공원에 그를 기리는 비석이 있다.

우리나라엔 고을마다 향교가 있었고 지금도 많지만, 사실 향교는 답사할 때 그다지 인기 있는 공간은 아니다. 대부분 6·25전쟁 이후 복원한 건물인데다 거의 큼직한 자물쇠로 잠겨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향교의 주건물인 대성전이 보물로 지정된 곳은 이곳 장수향교(보물 제272호)를 비롯해 나주향교(보물 제394호), 영천향교(보물 제616호) 등 한 손으로 꼽을 정도다.


▲ 한말 전북 의병들의 근거지였던 남덕유산 기슭의 토옥동계곡. 아름다운 가을빛이 애달프고 구슬프게 다가온다. / 계북면의 정인승 기념관. 우리말 연구와 보급에 일생을 바친 애국지사이자 한글학자인 정인승 박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생가 근처에 건립했다.

장수향교가 지금까지 무사히 전해오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 정경손이다. 정유재란 때 왜군은 남원성을 침공하고 북상 중 장수향교를 불태우려 했다. 당시 향교지기였던 정경손은 향교 마당 한가운데 꿇어앉아 경전을 외우며 의연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곳은 성전이니 누구도 침범할 수 없다. 침범하려거든 내 목을 먼저 베고 가라!” 이 기개에 감복한 왜군은 ‘이곳은 성스러운 곳이니 침범하지 말라’는 뜻으로 ‘본성역물범(本聖域勿犯)’이라 쓴 쪽지를 남기고 물러났다. 향교 앞에 이 분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다음으로 5의는 백용성(白龍城·1864-1940) 조사, 전재(健齋) 정인승(鄭寅承·1897-1986) 박사, 그리고 의병대장인 전해산(全海山·1879-1910)·문태서(文泰西·1880-1913)·박춘실(朴春實·1875-1914)을 말한다. 이 분들은 모두 구한말이나 일제강점기에 조국을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신 분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백용성은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불교계 대표로 활동하였고, 불교의 대중화·생활화·지성화 운동을 전개하는 등 일제의 친일 불교화정책에 저항하였다. 번암면 죽림리에 있는 죽림정사는 그의 생가다.


▲ 신광사 대웅전. 특이하게도 너새라고 불리는 넓적한 돌을 지붕에 얹었다. / 신광사의 아담한 부도밭에 낙엽이 휘날린다.

전해산 의병장은 이웃 임실 출신의 유학자. 1908년 고종의 밀조를 받아 대동창의단을 구성했고, 노획한 무기로 전남 중서부 지방을 장악한 후 전북 장수에서 거병 준비하다 체포돼 1910년 사형 당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수천의 군중이 모여 의병장의 장례를 치를 때 장군의 상여가 집 앞 냇가를 건너가자 의병장 부인 김해김씨는 방으로 들어가 음독자결하고 말았다고 한다. 이에 의병장의 유해는 다시 냇가를 건너왔고, 부인과 함께 쌍상여로 장례를 치르니, 충신열녀를 보내는 울음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고 한다. 번암면 원촌 마을에 의병장 부부의 묘소가 있고, 번암중학교 앞엔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문태서 의병장은 1908년 고향인 함양에서 의병을 일으켜 덕유산을 근거로 영남·호남·호서 일대에서 활약한 인물. 여러 전투에서 일본군을 무찔렀으나 부상을 입고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서 사형 당하였다. 장수 출신인 박춘실 의병장은 을사늑약 이후 의병 50여 명을 이끌고 무주·진안·장수 등지에서 60여 차례의 교전을 벌이며 일본군 300여 명을 사살하는 전공을 세웠다. 그러나 1909년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1914년 대구형무소 벽을 부수고 동지 100여 명을 탈옥시킨 다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계북면 양악리 입구 도로변에 문태서·박춘실 두 분 의병장을 기리는 전적비가 세워져 있다.

이제 계속 길을 짚어가자. 계북과 장계의 경계인 집재 고갯마루를 지나다보면 장계 분지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장계가 제법 작지 않은 고을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사실 장계는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장수와 독립된 하나의 현이었다. 장계에서 천천면을 지나 13번 국도를 타면 길은 물줄기를 끼고 이어진다. 장수 읍내엔 논개사당과 장수향교 등의 답사처가 있다. 장수군청도 빠지지 않는다. 사실 지도나 안내책자 등 자료를 얻을 일이 없으면 잘 들르게 되지 않는 곳이 바로 군청이다.

그러나 장수군청은 언제 봐도 멋지다. 의암송(義巖松·천연기념물 제397호)이란 멋들어진 아름드리 소나무가 군청을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는 400년쯤 되는데, 16세기 후반에 당시 장수현감 최경회가 주논개와 함께 심은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온다. 이번에 보니, 수평으로 뻗은 의암송 중간 가지에 떨어진 솔씨가 싹을 틔워 자라고 있어, 장수군민들의 작은 화제가 되고 있었다. 군청 왼편에 있는 아름드리 은행나무 역시 최경회가 옹달샘 주변을 정비하고 심은 것이 자라났다는 전설을 얻었다. 이 은행나무 덕분에 장수군청은 은행잎이 노랗게 물든 늦가을에 더욱 돋보인다.


▲ 논개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 지내는 사당인 의암사(義岩祀). 1956년에 건립한 것이다. / 단아한 자태가 돋보이는 장수향교. 임진왜란 당시 목숨을 걸고 향교를 지킨 정경손은 ‘장수 3절’의 한 분으로 추앙받고 있다.

올해 장수 의암사와 진주 의기사에 있는 논개사당의 표준 영정이 바뀌었는데, 사연은 이렇다. 예전엔 이당 김은호(1892-1979) 화백이 그린 영정이 두 사당에 모셔져 있었다. 그런데 지난 2005년 이 영정이 전라도와 경상도 곳곳에서 수난을 당했다. 김은호 화백의 친일행적 시비 때문이었다. 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진주 의기사에 봉안된 논개 영정을 강제 철거하면서 전북 지역에서도 의암사에 있는 논개 영정 교체를 요구했던 것. 결국 2006년 1월 전북 장수군과 경남 진주시는 합동으로 논개 표준영정 제작작가를 현상 공모하게 된다.

그런데, 김은호 화백의 친일 시비를 떠나 눈 밝은 사람은 이전 영정이 남원 광한루의 춘향 영정과도 빼닮았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남원 광한루의 춘향 영정은 김은호 화백이 1939년 당시 조선권번의 기생 김명애를 모델로 하여 제작했는데, 1955년 제작한 논개 영정은 이 춘향 영정과 아주 비슷하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김은호 화백이 춘향 영정을 기초로 하여 논개 영정을 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의암사에 들어서니 논개의 새로운 영정이 길손을 반겨준다. 묵념 후 자세히 올려다본다. 예전의 예쁘장하기만 하던 기생이 아니다. 미모는 물론이요, 제법 귀부인다운 품위에 눈빛의 기개까지 전체 분위기가 확 바뀌어 있었다. 이전의 영정과는 천지차이였다. 철저한 고증을 거쳐 만들었다는 이 논개 표준영정은 충남대 교수인 윤여환(52) 화백의 작품이다. 윤 화백은 충남대 홈페이지에 올린 제작기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 최근 새로 제작된 논개 표준영정. 충남대학교 윤여환 교수의 작품인 이 표준영정의 표정에서는 거사를 앞둔 긴장감이 은근히 드러난다. / 김은호 화백이 그린 옛 논개 영정/ 남원에 있는 춘향영정. 전문가들은 김은호 화백이 춘향영정을 기초로 하여 논개영정을 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논개 영정의 얼굴은 신안주씨(新安 朱氏) 용모 유전인자를 토대로 제작되었습니다. 2006년 1월부터 주논개(朱論介)의 얼굴 특징을 찾아내기 위해 ‘얼굴연구소’에 의뢰해, 신안주씨 여자의 얼굴 특징을 형질인류학적으로 분석했는데, 논개의 생장지인 장수지역(장수읍과 함양군 서상면, 전북지역 등)을 중심으로 신안주씨 문중을 촬영, 150여 군데의 얼굴을 계측 분석하여 신안주씨가 가지고 있는 동일 형태의 용모 유전인자를 추출해 논개에 가깝다고 판단되는 얼굴 모형을 찾았습니다.’

김 화백은 당선된 후에도 수차례의 얼굴 형태와 의상, 가체머리 등을 수정·보완하며 다시 2년의 산고 끝에 2008년 2월 문화관광부 표준영정심의위원회에서 국가표준영정 제79호로 지정받았다. 그리고 지난 10월에 있었던 논개축제 때 논개의 표준영정을 이곳에 모신 것이다.

기왕에 최근 바뀐 영정이니 좀 자세히 들여다보자. 윤 화백의 설명에 따르면, 얼굴화장은 고대 여인들에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유행한 ‘진수아미’라는 미용법이다. 이 화장법은 족집게를 이용해 주변 잔털을 뽑아내는 미용법인데, 넓고 네모반듯한 이마에 초승달 같은 눈썹을 잘 나타낸다. 윤 화백은 고구려 벽화의 여인상, 가락국기 김수로왕의 황후 허황옥 등과 조선 전기 하연 부인상, 운낭자상 등 조선 여인들의 얼굴도 대부분 진수아미 미용을 한 경우가 많아 논개 얼굴도 이 미용법을 따랐다고 한다.

또 당시 유행하던 머리 모양과 복식, 그리고 연화만초문사(蓮花蔓草紋紗) 문양을 한 의상복원은 안동김씨 묘 출토복식(1560년대)과 양평의 변수(1447-1524) 묘 출토복식·목각인형 주악상이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복식이 여름옷인 까닭은 논개의 거사일이 하절기이기 때문이다. 가녀린 여인이 왜장을 유인하여 열손가락에 힘을 다해 껴안고 함께 강에 투신하는 데 큰 역할을 한 10개의 큼직한 옥가락지도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 논개의 자세다. 예전 영정이 ‘간택’을 위해 예쁘게만 보이려고 노력했던 기생이라면, 새 영정은 의거를 앞두고 왜장을 향해가는 긴장감이 내면에 묻어난다.

논개의 새 얼굴까지 익혀뒀으니 이젠 장수 읍내를 벗어나도 서운하지 않을 터. 19번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달린다. 금강 발원지로 가기 위해서다. ‘물길이 길다’는 뜻을 지닌 장수라는 지명에서 볼 수 있듯 이 고장은 금강의 발원지다. 발원지 부근은 수분치(水分峙)라는 지명으로 불린다. 대동여지도에도 이렇게 표기되어 있다.


▲ 1 천천면 부근을 흐르는 금강 상류의 늦가을 풍경. 금강은 장수 고을에서 발원한다. / 2 장수군청을 돋보이게 해주는 의암송. 16세기 후반에 당시 장수현감 최경회가 주논개와 함께 심은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온다. / 3 최경회가 장수현감으로 재직할 당시 심었다고 전하는 장수군청 옆의 은행나무. 늦가을 정취가 물씬 풍긴다.

금강은 낙동강·한강에 이어 남한에서 세 번째로 긴 강이다. 금강의 공식적인 발원샘은 장수군 장수읍 수분리 신무산(897m) 중턱의 ‘뜬봉샘’이다. 이 샘물은 금강의 첫 실개천인 강태등골을 이루며 마을 앞에서 원수분천과 만나 장수읍을 적시고, 천천을 끼고 가다 장수를 벗어난다. 이후 비운의 혁명가 정여립이 머물던 진안의 죽도를 휘감은 뒤 전북과 충청도 땅을 관통하며 북류하다 군산과 장항 사이에서 서해안으로 흘러든다.

물길은 395.9km, 약 1,000리다. 동으로는 백두대간, 남으로는 금남호남정맥·금남정맥, 북으로는 한남금북정맥·금북정맥에 안겨 있는 금강의 유역면적은 9,810㎢에 이른다.


▲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인 수분치 고갯마루. 장수 사과를 홍보하기 위해 설치한 대형조형물을 크레인으로 청소하고 있다. / 수분치 고갯마루에 있는 소나무. 분수령에서 자라고 있어 수분송(水分松)이라는 멋진 이름을 얻었다.

현재 19번 국도가 지나는 수분치 고갯마루엔 수분송(水分松)이라는 이름을 얻은 소나무 한 그루가 지나는 길손을 굽어보고 있다. 수분치 고갯마루에 떨어진 빗방울은 운명을 따라 각각 남쪽 섬진강이나 북쪽 금강으로 흘러든다. 그래서 수분송에 떨어진 빗줄기들의 운명은 어디로 떨어지느냐에 따라 명확히 갈린다. 수분송 맞은편, 원수분 마을 입구의 승강장 왼쪽으로 난 길로 찾아 들어가면 뜬봉샘으로 갈 수 있다. 수분치에서 뜬봉샘까지는 걸어서 2km 정도 들어가야 한다.

수분리는 ‘물뿌랭이마을’로도 불린 흔적이 있다 하니 옛날 주민들도 이곳을 발원지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전설에 따르면 뜬봉샘은 고려 말에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하다 조선 건국의 계시를 받은 곳이라고 전한다. 뜬봉샘이란 이름은 옛날 이 산에서 고을의 재앙을 막고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산에 군데군데 뜸을 뜨듯이 봉화를 올렸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또 일제가 우리나라의 정기를 누르기 위해 이곳에 뜸을 놓았다 해서 붙여진 것이라고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이 경우는 ‘뜸봉샘’이 된다. 요즘은 뜬봉샘이라 하는데, 봉황이 비상한다는 의미의 ‘뜬봉샘’(飛鳳泉)으로 해석한다. 이 길손의 생각은 우리말 어원으로 살펴본다면, 뜬봉이나 뜸봉은 모두 ‘샘물이 뚬벙뚬벙 떨어진다’는 뜻을 지닌 의성어가 아닌가 싶다.

어쨌든 화려한 문화유산만이 아니라 이 산하에 애정이 조금 깊은 이들이라면 이곳 장수에서 뜬봉샘을 찾는다. 이 길손도 10여 년 전 뜬봉샘을 처음 찾았다. 당시 자그마한 나무팻말 몇 개가 인도해서 가본 뜬봉샘은 주변의 아늑한 풍치가 제법이었다. 금강의 발원지라고 하기에도 손색이 없었다. 남한강의 발원지인 태백의 검룡소가 그 이름처럼 신비롭고 웅혼한 서기가 넘친다면, 뜬봉샘 역시 그 이름을 닮은 순진한 새악시 같은 소박함을 읽을 수 있었다.


▲ 1 원래 논개가 살았다는 주촌마을은 오동저수지가 생기면서 물속에 잠겼다. / 2 뜬봉샘 가는 길. 장수군은 2011년까지 이곳을 생태공원으로 꾸밀 예정이라 한다. / 3 금강의 발원지인 뜬봉샘. 아쉽게도 1천리 금강의 발원 샘물이 아니라 마치 동네 우물처럼 보인다.

이번에 가보니 생태 답사지로 꾸미려는 듯 아랫마을부터 샘까지 나무계단을 깔아놓고, 군데군데 계류를 관찰할 수 있는 조망대까지 갖춰놓았다. 물론 주변 숲은 짙어 생태 체험지로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정작 안타까운 것은 뜬봉샘 그 자체였다. 냇가의 자갈로 축대를 둥그렇게 쌓아 샘을 조성했는데, 수량은 제법 많았다. 그러나 발원지가 갖는 청정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발원지라 하면 분명 그 샘물을 받아먹을 수 있어야 하건만 도저히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예전엔 옹달샘이었는데, 큰비가 내릴 때마다 샘이 훼손되자 아예 이렇게 튼실하게 조성하게 된 것이라 한다.

잠시 다른 강들의 발원지를 떠올려보았다. 낙동강 발원지로 널리 알려진 황지는 태백 시내 한가운데 위치해서 그렇다 하더라도 진짜 발원지인 너덜샘(은대샘)은 그야말로 청정하다. 남한강 발원지로 알려진 검룡소 또한 주변 풍광이 제법이거니와 그보다 위쪽에서 흐르는 샘들도 앙증맞다. 섬진강 발원지인 진안의 데미샘도 순결함의 절정을 이룬다. 그런데…. 금강 발원지인 이 뜬봉샘만 탁한 것이다.

샘이 너무 커서 우물처럼 보이는 것도 큰 문제다. 또 주변에 자라고 있는 식물도 가만히 보니 원래 이곳에서 뿌리를 박고 살던 개체가 아니라 복원공사 때 외부에서 흘러든 개체 같이 보였다. 생태 전문가의 진단이 필요한 대목이다. 뜬봉샘은 이렇듯 금강 발원지로서 2퍼센트가 아닌 98퍼센트가 부족하다. 발원샘은 인공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도시의 약수터나 마을의 우물과는 격이 다르지 않은가 말이다.

금강 물을 마시며 어린 시절을 보낸 길손은 너무 아쉬워 장수군청에 전화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랬더니 담당자 역시 이 때문에 애를 태우고 있었다. 그는 2011년까지 뜬봉샘 부근을 차근차근 생태공원화할 예정이라 했다. 그런데 무엇보다 조금만 가물어도 샘물이 탁해지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구상 중이라 했다. 길손은 그에게 낙동강·한강·섬진강 발원지 샘물 사진을 보내주기로 약속했다. 몇 년 뒤 뜬봉샘을 다시 찾았을 때 물 한 바가지 떠서 시원하게 벌컥벌컥 들이킬 수 있었으면 정말 좋으련만.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부디 예전의 앙증맞은 옹달샘으로 다시 태어나길 두 손 모아 빌어본다.

이런 간절한 마음을 갖고 수분치에서 19번 국도를 타고 남원 방면으로 내려선다. 이곳부터는 이제 섬진강 수계다.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인 금남호남정맥이 지나는 장수는 고을이 금강 수계와 섬진강 수계로 나뉜다. 즉, 장수읍 대부분과 장계·천천·계남·계북면은 금강 수계요, 산서·번암면은 섬진강 수계가 된다.


▲ 방화동 가족휴가촌은 오토캠핑을 즐기는 마니아들에게 인기 있는 캠핑지로 손꼽힌다. / 번암면 방화동계곡에 조성된 가족휴가촌의 늦가을 풍경.

번암면은 장수에서도 가장 깊은 산골이다. 광복 후에만 이 부근에서 포수들이 총이나 올무로 잡 은 호랑이가 다섯 마리나 될 정도였다. 장안산·백운산 부근은 숲이 짙어 근처 주민들은 어딘가에 호랑이가 아직도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엔 호랑이에 놀란 사람들도 많고, 심지어 호랑이에 먹힌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지지계곡은 정말로 깊고 깊은 산골이다. 하지만 얼마 전 도로확포장 공사가 끝나 무령고개를 통해 장계면까지 손쉽게 오갈 수 있게 되었다. 편리하긴 하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새로 포장된 아스팔트 도로를 타고 지지계곡을 지나 무령고개를 넘어 논개생가로 간다. 길손이 이곳 장계면 대곡리의 주촌 마을에 처음 들렀던 것은 10여 년 전인 1990년대 중반의 어느 겨울, 명절 끝이던 그 날은 눈이 많이 내렸다. 장계 차부에서 주촌 마을로 들어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한두 시간이 지나도 버스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폭설로 버스 운행이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차부에는 길손 말고도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대부분 주민인 듯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우리와 달리 ‘무진장’ 여유로웠다. 놀라울 정도였다. 안절부절 하는 사람은 도시에서 온 길손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나던 소형 트럭 운전사의 도움으로 대곡리 초입인 오동저수지까지 겨우 접근할 수 있었다.


▲ 백두대간 기슭의 심심산골이던 장수 고을로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게 해준 중부고속도로. 그 너머로 남덕유산이 우뚝 솟아 있다. / 무령고개 가는 길. 지금은 이렇게 포장이 되었지만,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호랑이가 나올 정도로 깊고 깊은 산속이었다.

깊고도 깊은 산골, 장수에서도 깡촌이던 대곡리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400년쯤 전이다. 논개의 부친인 주달문(朱達文) 진사가 건너편 범바위골이라는 마을에서 이주해 터를 잡고 서당을 차려 학동들을 가르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 사람들은 이곳을 주촌(朱村)이라 했는데, 주(朱) 진사가 사는 곳이란 뜻이다. 나중엔 주논개의 고향이란 뜻이 되었다. 원래 주촌은 지금 오동저수지 자리다.

1990년대 중반 오동저수지를 만들 때 주촌이 물에 잠기게 되자 이곳에 살던 주민들 중 많은 이들이 고향을 떠나 대도시로 이사했는데, 군산으로 간 사람들이 가장 많다고 한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평야가 있고, 그나마 땅 한 뙈기도 못 구한 사람들은 막노동이라도 할 수 있는 항구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논개생가는 저수지 옆 길가에 추레하게 복원되어 있었으나, 논개생가를 주씨의 선산이 있는 윗마을의 궐촌으로 다시 옮기면서 마을 이름도 주촌으로 바뀌었다. 지금 논개생가 마을의 내력이다.

당시 길손은 논개생가 마을에서 꼬박 하루를 보냈는데, 모든 이들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했던가. 이번에 들러보니 논개의 고향인 주촌 마을도 정말 많이 변해 있었다. 옛날엔 투막집에 양철로 지붕을 올린 집이 대부분이었으나, 어느새 동화 속 나라 같은 정겨운 초가가 옹기종기 자리 잡은 전통마을로 바뀌었고,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집도 있었다. 실생활에 쓰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연자방아·디딜방아도 있었고, 계류엔 물레방아도 보였다. 승용차 등 문명의 이기들이 보이지 않았다면, 조선시대 한 산골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현대화되지 않고 전통 마을로 조성되어 너무 다행스러웠다.

다행히 정겨운 마음은 여전했다. 이번에 마을에서 만난 열서너 살짜리 계집애는 낯선 이방인에게 꾸벅 인사부터 했다. 제법 단련된 길손이건만 얼마나 당황했는지. 또 마을을 둘러보다 만난 할머니 역시 지나는 길손에게 반갑게 말을 건넸다. 무엇보다 변하지 않은 것 중 하나는 논개에 대한 존경심이었다. 주민들은 논개에게는 여전히 ‘님’이라는 존칭의 접미사를 꼭 붙였다. 하긴 이 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웬만한 장수 사람들은 누구나 ‘논개님’이라 부르긴 하지만-.

대곡리엔 논개의 전설이 여기저기에 서려있다. 예전 이 골짜기에 있었다는 대용소(大龍沼)는 논개 탄생설화의 일종이다. 지금으로부터 사백수십 년 전, 주달문의 부인이 첫아이를 나았다. 기골이 장대하고 용호상박하는 형상을 한 남자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바로 윗목으로 서너 발자국 걸어서 사방을 응시하는 등 꼴이 범상치 않았다. 주달문은 이 아이의 이름을 대룡(大龍)이라 이름 짓고 감추어 키웠다. 그러나 소문은 퍼져 구경 오는 사람들이 날로 많아졌다. 이 일이 관아에 알려지면 나라를 망칠 역적으로 몰려 멸문지화 당하는 것이 두려웠던 주달문은 고민 끝에 아이를 다듬잇돌로 눌러 죽여 근처에 있는 소에 버렸다. 그러자 어디선가 날개 돋은 용마 한 마리가 나타나 하늘을 한 바퀴 돌고는 그 소로 들어갔다. 그게 대용소다.

이는 우리나라 곳곳에 퍼져있는 아기장수 전설유형 중 하나지만, 이 얘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 전설은 논개 탄생의 예고편이었다. 이런 일이 있고 난 어느 날 밤, 주달문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서 말했다. “나는 너의 조상인데 나의 집(幽宅)이 대장군좌라서 그 기운으로 장차 나라의 환란을 구할 장수를 보냈더니 네가 무지몽매해서 큰 인물을 잃었구나! 원통하다! 그러나 나의 기운이 남았으니 이번에는 여장수를 보내리라.”


▲ 1 깊은 오지 산골에서 체험마을로 탈바꿈한 논개 생가마을. 산골마을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 2 장계면 대곡리 논개유적지에 복원해 놓은 논개 생가. 주변에 논개 부친묘와 논개기념관 등이 있다. / 3 논개 생가에 세워져 있는 논개 동상.

이리하여 주씨 부인은 열 달 뒤 딸아이를 낳았으니 바로 논개였다. 그런데 태어난 때가 갑술년 갑술월 갑술일 갑술시, 즉 개해 개월 개일 개시였다. 그래서 ‘사람이 아닌 개를 낳았다’고 해서 논개라 했다. 논개는 ‘낳다’의 이곳 방언인 ‘놓다’와 술(戌)의 ‘개’를 합한 ‘개를 놓다’라는 뜻이다. 이 방언에서 대곡리가 행정구역으로 비록 전라북도이긴 하지만, 경상남도 함양과 가까운 탓에 경상도 방언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어린 논개는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 정도로 뛰어났고, 이미 10세 때 고상한 기품을 갖추었다. 논개가 13세가 되던 해 논개의 앞날에 암운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부친 주달문이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주색잡기에 빠져있던 논개의 숙부 주달무는 당시 토호 김풍헌을 찾아가 자신의 놀이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논개를 넘기려는 계략을 꾸몄다. 김풍헌은 백치불구인 자신의 자식을 장가보내기 위해 논개를 민며느리로 사오는 대가로 논개의 숙부에게 논 세 마지기와 엽전 삼백 냥, 당백포 세 필을 주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논개 모녀가 친정으로 도망가자 주달무도 도망갔고, 김풍헌은 이들을 관아에 고발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주달무는 오히려 논개 모녀를 상대로 장수 현감에게 소장(訴狀)을 올렸다. 결과 ‘죄 없는 사람을 무고해서 괴롭히는 처사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판결이 났다. 논개 모녀는 무죄 방면됐다.

이때 판결을 맡았던 장수현감이 바로 임진왜란 때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싸우다 전사한 최경회(崔慶會·1532-1593) 장군이다. 오갈 곳 없게 된 논개 모녀는 드난살이로 현감 부인의 병수발을 했다. 하지만 곧 현감 부인은 세상을 뜨고, 논개는 최경회와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이후 최경회가 고향에서 모친 시묘살이를 하던 중에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경상우병사(慶尙右兵使)가 된 최경회는 진주성으로 들어갔다. 진주성 싸움에서 민관은 힘을 합쳐 싸웠지만 결국 성은 함락 당하고 말았다. 최경회는 장수들과 촉석루에 모여 나라를 지키지 못한 책임으로 ‘남강물 파도가 마르지 않으면 우리 혼도 죽지 않으리’라는 시를 읊고 남강물에 뛰어들어 자결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논개는 자결 대신 복수를 택했다. 논개는 승전 축하잔치를 연 왜군들 틈에 기생으로 변장하고 들어가 용맹하기로 이름난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毛谷村六助)를 껴안고 10여 일간 내린 장맛비로 물이 넘실대는 남강에 몸을 던졌다. ‘신의 칼’이란 별명을 가진 게야무라는 쇼군인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선봉장으로서 이름 날리던 전설적인 사무라이였다.

해 저물어 가는 논개생가에서 충절을 깊이 새기고 길을 나선다. 대곡천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원래 논개생가가 있던 오동저수지를 지나고 곧이어 26번 국도와 만난다. 여기서 왼쪽으로 가면 처음 장수로 들 때 지났던 장계면 소재지. 거기서 장수 나들목으로 들어서면 곧 고속도로로 올라탈 수 있다. 그러나 장수까지 와서 어찌 육십령을 넘지 않으랴.

저물어 가는 육십령(六十嶺) 굽잇길을 오른다. 육십령, 고갯길 굽이가 60굽이인지, 안의 감영이나 장수 감영까지가 60리인지, 도적놈들 때문에 60명이 모여야 겨우 넘어설 수 있었는지 헷갈리지만, 구한말 바다 건너의 도적놈들이 호시탐탐 이 땅을 노릴 때 분연히 일어선 의병들은 호랑이처럼 이 육십령을 넘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진주성 전투 당시 살아남은 장수 출신 의병들이 남강에서 건져 모셔온 논개의 시신도 이 육십령을 넘어 생가와 멀지 않은 함양 땅에 묻혔다. 그렇다. 누가 뭐라 해도 논개가 중심을 이루는 장수 고을 답사는 육십령 너머 함양 땅에 있는 논개 묘소를 참배해야 완성된다. 육십령 고갯마루에 차를 세우고 멀리 장수 땅을 되돌아본다. 11월 중순의 육십령. 늦단풍도 끝물인지 백두대간을 스치는 바람결에 낙엽이 우수수 쏟아진다. 초겨울의 숨결이 참 서늘하다.

장수, 어떤곳인가


▲ 현재의 장수읍내 모습

전라북북도 동부 산간지대에 자리한 장수군(長水郡)은 동쪽은 백두대간의 분수령을 경계로 경상남도 함양군·거창군과 서쪽은 전라북도 진안군·임실군, 남쪽은 남원시, 북쪽은 무주군과 접한다.

무주·진안과 함께 전라북도 동부 산악권에 속하여 장수·장계 읍면 소재지의 분지를 제외한 대부분이 산지이며, 동쪽 백두대간쪽이 특히 더 높다. 북동쪽의 계북면에 남덕유산(1,507m), 남동부의 번암면에 백운산(1,279m)이 솟아있고, 그 사이의 육십령(734m)을 통해 경상남도 거창군과 연결된다.

금남호남정맥은 섬진강과 금강의 분수계가 된다. 신무산(897m) 뜬봉샘(뜸봉샘)은 금강 발원지다. 이곳에서 발원한 금강은 장수읍과 천천면을 적시고, 무령고개에서 발원한 장계천을 받아들여 몸집을 키운 뒤 진안으로 흘러간다.

기후는 연평균기온 12∼13℃, 1월 평균기온 -3.5℃, 8월 평균기온 23.3℃이다. 연평균강수량은 1,300mm 내외로 남부내륙형 기후구에 속한다. 고원 형태의 내륙분지가 많아서 고랭지에 해당하며,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고 여름에는 서늘하지만, 집중호우가 자주 발생한다.

지금의 장수군은 장수와 장계가 합친 것이다. 장수는 백제시대에 우평현이었으나, 통일신라시대에 고택이라 하여 장계군에 속했다가 고려시대 이후 장수현이 되어 남원부에 소속됐다. 장계는 백제시대에는 백해군 혹은 백이군이라고 했으며, 통일신라시대에 벽계군이라 했다가 고려시대 이후 장계현이 되어 남원부에 속했다. 1896년 장수현과 장계현이 통합되어 장수군이 됐다. 1970년 장수면이 읍으로 승격됐다. 현재 장수읍·산서면·번암면·장계면·천천면·계북면·계남면의 1읍 6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덕유산

덕유산은 최고봉인 향적봉(香積峰·1,614m)이 솟은 북덕유산과 남덕유산(1,507m)으로 나뉜다. 남덕유산은 전라북도 장수군과 경상남도 거창군·함양군 경계에 솟아 있다. 북덕유산과 남덕유산 사이의 약 20km 구간에는 해발고도 1,300∼1,400m의 백두대간 주능선이 경상남도와 전라북도의 도계를 이룬다. 덕유산 국립공원 사무소 063-322-3174 ~5.

장안산


장수읍·계남면·번암면 경계에 솟은 장안산(1,237m)은 백두대간의 영취산(1,076m)에서 갈라져 나온 금남호남정맥이 가장 먼저 빚은 산이다. 북쪽 기슭에서 흘러내린 계류는 계남면을 적시고 금강 상류가 되고, 동서남쪽에서 흘러내린 계류는 백운천으로 흘러 섬진강 상류가 된다. 남서쪽의 덕산계곡, 남동쪽의 지지계곡 등 깊고 그윽한 골짜기가 많아 인기가 높다. 또 가을철 동릉의 넓은 억새밭이 빼어나다. 인근엔 방화동 자연휴양림, 방화동 가족휴가촌 등이 있다. 1986년 군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북동쪽의 무령고개(1,076m)에서 접근하는 등산 코스가 인기 있다. 입장료 어른 800원, 청소년 600원, 어린이 300원. 주차료 승용차 2,000원.

뜬봉샘


장수읍 수분리 금남호남정맥 신무산(897m) 중턱의 뜬봉샘(뜸봉샘)은 금강 발원지다.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하다 조선 건국의 계시를 받은 곳이라는 전설도 전해온다. 뜸봉샘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옛날 이 산에서 고을의 재앙을 막고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산에 군데군데 뜸을 뜨듯이 봉화를 올렸다는 데서 유래했다. 19번 국도가 지나는 수분치(水分峙) 고갯마루에서 서쪽의 원수분 마을을 지나 2km 정도 올라간 지점에 있다. 마을 주차장에서 차를 대놓고 30분 정도 걸어 올라가야 한다.

논개사당


장수읍 두산리 남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논개사당(전북기념물 제46호)은 논개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 지내는 사당으로 의암사(義岩祀)라고도 한다. 논개는 임진왜란 당시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毛谷村六助)를 껴안고 촉석루 앞 바위에서 남강으로 투신했다. 그가 뛰어내린 바위는 의암이라 불린다. 지금의 사당은 호남절의록·호남삼강록·의암주논개사적비 등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해 1956년에 건립한 것이다. 한편, 1846년(헌종 12)에 현감으로 장수에 온 정주석(鄭胄錫)은 이곳이 논개가 자란 고장임을 기념하여 논개생향비(論介生鄕碑)를 세웠는데, 사당 건립 당시 발굴되어 경내에 보관하고 있다. 1974년 현 위치로 옮겼고, 1998년 경역을 확대했다. 입장료·주차료 무료. 전화 063-351-4837 , 350-2561.

논개생가


장계면 대곡리는 임진왜란 당시 왜장 게다니무라 로쿠스케를 껴안고 진주 남강에 몸을 던진 ‘충절의 여신’ 주논개(朱論介)가 태어난 곳이다. 본래 생가가 있던 주촌마을이 1990년대 중반에 오동저수지로 잠기게 되자 좀 더 위쪽의 신안 주씨 선산 근처로 옮겨 생가를 복원하고 유적지를 조성했다. 이곳엔 논개생가를 비롯해 논개 동상과 사적불망비각, 논개 유허비, 논개 부친의 묘소 등이 자리하고 있다. 입장료, 주차료 무료. 관리사무소 전화 063-352-2550 , 350-2583

장수향교


장수읍 장수리의 장수향교(長水鄕校)는 1407년(조선 태종 7)에 덕행이 훌륭한 사람들을 모셔 제사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을 위해 장수에 세운 지방교육기관이다. 1686년(숙종 12)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공자를 비롯해 여러 성현에게 제사지내는 공간인 대성전(大成殿·보물 제272호)은 앞면 3칸, 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장수향교는 임진왜란 때에도 잘 보존되어 조선 전기 향교의 형태를 알 수 있는 건축물이다. 특히 대성전은 조선시대 향교 건축의 대표 건물 중 하나로 꼽힌다. 전화 350-2224, 2225(향교 관리사 351-7945).

정충복비


장수읍 장수향교 앞에 자리하고 있는 정충복비(丁忠僕碑·지방문화재자료 제38호) 조선시대 중기 사람인 정경손의 의로운 뜻을 기리고 있는 비석이다. 그는 임진왜란 당시 왜적의 한 부대가 이곳 장수지역에 침입하여 장수향교를 불사르려 하자 문을 굳게 닫고 ‘만약 문에 들려거든 나의 목을 베고 들라’는 기개로 향교를 지켜냈다. 임진왜란으로 각지의 향교는 거의 소실됐으나, 장수향교만이 전화를 입지 않고 당시의 원형대로 보전되어 그 표본이 되고 있다. 정경손의 투철한 책임감과 향교를 지킨 의행을 기리기 위해 1846년(헌종 12) 장수현감 정주석이 이 비를 세웠다. 이 비석의 전면에는 ‘호성충복정경손수명비’라는 명문이 음각되어 있다.

타루비


천천면 장판리 장척 마을의 도로가에 자리하고 있는 타루비(墮淚碑·지방기념물 제83호)는 현감을 따라 순절한 통인(通引·관아에 딸려 잔심부름을 하던 벼슬아치)의 충절을 기리고 있다. 1678년(조선 숙종 4) 당시 장수현감이 전주감영으로 가기 위해 말을 타고 이곳을 지나다 갑자기 꿩이 우는 소리에 말이 놀라는 바람에 현감이 절벽 아래의 배리소에 빠져 목숨을 잃자 통인은 자기의 잘못이라며 손가락을 깨물어 바위벽에 꿩과 말을 그리고, 타루 두 글자를 써놓고 물에 뛰어들어 죽었다 한다. 1802년 타루비, 1881년 순의비를 타루비와 나란히 세웠다.

합미성


장수읍 식천리 합미성(合米城·지방기념물 제75호)은 해발 800m의 산능선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 약 1천 년 전 후백제 시대의 산성이다. 합미성이란 이름은 후백제 때 성에 주둔한 군사들이 먹을 식량을 모았다하여 붙여진 것이라 한다. 당시 군사들이 이용하던 물을 땅속으로 보내던 수로관 시설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 성의 둘레는 320m, 높이는 바깥쪽이 4.6m, 안쪽이 1.6m. 현재 북서쪽과 남쪽의 일부 성벽만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고, 대부분의 성벽은 무너져내린 상태다. 성터에서 3㎞쯤 떨어진 신무산에 허수아비로 군사를 만들어 적군이 합미성이 아닌 신무산으로 유인하여 적을 무찔렀다고 한다.

창계서원


장수읍 선창리 창계서원(創溪書院·문화재자료 제36호)은 조선의 가장 명망 있는 정승으로 칭송받고 있는 황희(黃喜·1363-1452) 정승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한 서원이다. 1695년(조선 숙종 21)에 세워졌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됐다가 1955년에 중건했다. 방촌 황희를 주벽으로 하여 황수신·강백진·장용두 등을 배향했다. 현재 남아 있는 상현재(尙賢齋)는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앞면 3칸, 옆면 1칸 규모다. 이 서원은 장수군에서 가장 오래된 서원이다. 구서원(舊書院) 터에 1948년에 세운 비가 남아 있다.

팔성사


장수읍 용계리 팔공산 기슭에 있는 팔성사(八聖寺)는 백제 무왕 때인 603년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해감 스님이 창건했다. 그의 제자 7명이 모두 근처에 암자를 1개씩 지었는데, 팔성사라는 이름은 바로 해감과 그의 제자 7명에서 유래한다. 조선 초기에 폐사되자 부속암자 중 하나를 본 절로 삼았다. 1974년 비구니 법륜 스님이 대웅전을 복원했고, 1991년부터 극락전과 삼성각·성적선원 등을 건립하는 등 여러 번 불사를 하여 지금에 이른다.

장수 양악탑


계북면 양악리 장수 양악탑(陽岳塔·시도유형문화재 제21호)는 수방사(壽訪寺)터로 전하는 양악리 산기슭 밭 가운데에 서 있는 작은 5층탑이다. 여러 차례의 옮김과 세움을 반복하면서 탑의 일부 부재가 없어지고 손상도 심한 상태다. 탑은 네모난 받침돌 위에 탑신부를 쌓았다. 1층 몸돌은 2층 이상의 몸돌에 비해 긴 직사각형을 이루고 있고, 2층 몸돌에만 기둥 모양의 조각이 있다. 2층 이상의 지붕돌은 모두 위층의 몸돌과 한 돌로 되어있다. 지붕돌과 그 위층의 몸돌을 하나의 돌로 만들어 쌓아올렸는데 보기 드문 모습이며, 탑신 몸돌의 윗부분 너비를 좁혀 만든 점도 주목할 만하다. 고려 후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신광사 대웅전


천천면 와룡리 성수산에 있는 신광사(新光寺)는 830년(신라 흥덕왕 5)에 무염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40년(헌종 6)에 현감 조능하가 수리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석가모니를 모시는 법당으로 절의 중심건물인 대웅전(도유형문화재 제113호)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주심포양식에 속한다. 지붕을 너새 또는 돌기와라고 불리는 넓적한 돌을 얹었다. 이외에도 경내에는 명부전, 칠성각 등이 있다.

압계서원


산서면 학선리에 있는 압계서원(鴨溪書院·도문화재자료 제35호)은 고려의 명신 육려(陸麗)·임옥산(林玉山)·박이항(朴以恒) 3인의 신위를 모시기 위해 1789년(정조 13)에 세운 서원이다. 1798년 박이겸(朴以謙), 1799년 전설(全渫)을 각각 배향했다.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에 따라 철거된 뒤 후손들이 제단을 만들어 제사만 지내다가 1958년 중건했다. 해마다 3월17일 향사를 지낸다. 산서면의 향약소(鄕約所)로도 사용됐다.

권희문 가옥


산서면 오산리에 있는 권희문 가옥(도민속자료 제22호)은 조선시대 고가(古家)다. 현 소유주의 10대 조가 광해군의 사화를 피해 오산리에 정착하면서 건립했다. 상량문에 따르면 안채는 1866년, 사랑채는 1733년에 지었다. 안채·사랑채·아래채·문간채·바깥채·서쪽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농가로 바뀌어 집 대부분을 농사와 관련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옛 가옥의 중심은 사랑채인데 이 가옥은 안채가 중심이다. 이 가옥은 상류가옥이 근대화되어 가는 과정을 짐작할 수 있다는 데 의의를 지니고 있다.

어필각


산서면 오성리의 어필각은 1414년(태종 14)에 당시 청백리로 소문난 천곡 안성(安省·?-1421)에게 내린 장수 오성리 영락 12년 왕지(시도유형문화재 제143호)를 보관하기 위해 1752년에 세운 건축물이다. 왕지란 임금의 명령이나 전달할 사항을 적은 문서를 말한다.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인 안성은 1393년(태조 2) 청백리로 뽑혔으며, 지보주사·참지의정부사·강원도관찰사 등의 벼슬을 지냈다. 죽은 후 장수의 창계서원에 모셔졌으며, 시호는 사간(思簡)이다.

어서각


번암면 노단리 어서각(御書閣·도문화재자료 제32호)은 영조가 장현경에게 하사한 친필을 보관하기 위해 정조 23년(1799)에 세운 건축물이다. 장현경(張顯慶·1730-1805)은 1752년 과거에 급제해 춘추관기사관 겸 홍문관박사를 시작으로 춘추관, 기주관, 편수관 등을 역임했다. 건물은 여러 차례 고쳐 지었는데, 입구에 있는 철로 만든 홍살문과 삼문을 지나면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어서각이 있다. 가운데 칸에는 어서각이라는 현판과 건물 수리와 관련된 4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죽림정사


번암면 죽림리에 있는 죽림정사는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인 백용성(白龍城·1864-1940)의 탄생 유적지이자 사찰이다. 백용성은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불교계의 대표로 활동했고, 불교의 대중화·생활화·지성화 운동을 전개하는 등 일제의 친일불교화정책에 저항했다. 경내에는 목조로 지은 생가를 비롯해 7여래탱화와 69조사탱화 등을 봉안한 용성교육관, 3존불보살상과 5탱화를 봉안한 대웅보전, 백용성 조사의 유품을 소장한 용성기념관, 충의원통문과 범종법고루 등이 있다.

정인승기념관


계북면 양악리 정인승기념관은 우리말 연구와 보급에 일생을 바친 애국지사이자 한글학자인 전재(健齋) 정인승(鄭寅承·1897-1986) 박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05년 생가 근처에 사당과 함께 건립했다. 정인승 선생은 1897년 장수군 계북면 양악리에서 태어나 조선어학회에 가입, 사전편찬회 회원으로 적극적으로 활동했고, 일제가 한글 연구자들과 한글 운동가들을 탄압하기 위해 만들어낸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체포돼 1942년 10월부터 1945년 8.15광복까지 옥살이를 했다.

의암송


장수읍 장수리 장수군청 앞에 있는 의암송(義巖松·천연기념물 제397호)은 16세기 후반기에 당시 장수현감 최경회가 의암 논개와 함께 심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소나무는 현재 수고 8m, 흉고 직경 3.2m의 노거수로 수령은 약 400년쯤 된다. 소나무로서는 보기 드물게 원줄기가 왼쪽으로 꼬여 수평을 이룬 모양새가 아름답다. 지상으로부터 3.5m 부분에서는 2개의 큰 가지가 남북방향으로 갈라져 있는데, 북쪽 가지의 지름은 약 80㎝이고 남쪽 가지의 지름은 약 50㎝이다. 그 위로 줄기가 여러 개로 갈라져 우산 형태를 이룬다.

장수 봉덕리 느티나무


천천면 봉덕리 고금 마을 뒷산에 자라고 있는 장수 봉덕리 느티나무(천연기념물 제396호)는 나이 500살로 추정되는 당산나무다. 높이 18m, 가슴높이 둘레 6.13m의 크기다. 지상으로부터 약 1.5m까지 외줄기로 되어 있고, 그 위부터 줄기가 갈라져 있다. 주간부는 내부가 비어있는 부분도 있으나 껍질은 깨끗하고 생육상태도 양호하며 수형도 아름답다. 이 느티나무는 마을의 수호와 번영을 비는 당산제를 지내는 풍습이 아직도 남아 있다.

와룡 자연휴양림


천천면 와룡리의 와룡 자연휴양림은 계곡 분지를 이루고 있어 주위경관이 아름답고, 계곡물은 깨끗하고 차갑기로 유명하다. 숲에는 쪽동백·참나무·느릅나무·낙엽송·적송 등이 울창하고, 산막 시설은 더위를 느낄 수 없는 해발 650m 지대에 집중되어 있어 한여름에도 시원하게 지낼 수 있다. 그러나 여름뿐만이 아니다. 봄엔 각종 야생화가 만발하고, 가을엔 각종 산 열매와 단풍, 겨울엔 눈썰매장에서 눈썰매를 즐길 수 있는 사계절 휴양지다. 입장료 2,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 산막 사용료는 4평형 25,000원, 복합산막1식(13평) 70,000원, 6평형 45,000원(욕실 외부)·50,000원(욕실 내부), 10평형 60,000원. 비수기(9월1일~5월31일) 시설물(숙박시설포함) 30% 할인, 5일 이상 시설물 이용시 40% 할인, 숙박시설 사용시 입장료 50% 할인. 전화 063)350-2493, 063)353-1404 평일 09:00-18:00 www.jangsuhuyang.kr

방화동 가족휴가촌


번암면 사암리 방화동 가족휴가촌은 장안산 남쪽에 조성된 가족단위 국민휴양지다. 주요 시설로는 오토캠핑장 2곳, 야영장 3곳을 비롯해 모험놀이장·가족놀이장·체육광장·전망대 등이 있다. 등산로는 방화동 가족휴가촌~덕산계곡(용소)~범연동~장안산 정상 코스가 3시간 소요, 덕산계곡까지의 산책 코스는 1시간 소요. 입장료 어른 2,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 야영장 사용료는 소형 텐트(5인 이하) 1일 5,000원, 대형 텐트(6인 이상) 1일 10,000원. 평상 사용료 1일 10,000원. 전화 350-2562~3, www.jangsuhuyang.kr/Banghwa2

방화동 자연휴양림


번암면 사암리의 방화동 자연휴양림은 장안산 남쪽에 조성된 휴양공간이다. 휴양림 시설들은 해발 500m 이상의 깊은 산중에 위치해 있고, 사방으로 1,000m가 넘는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어 더운 여름철에도 기온이 낮고 계곡물은 차다. 또한 기암절벽, 다양한 수목 등 계곡 주변의 경관이 수려하고 공기가 맑다. 통나무집, 산림문화휴양관 및 수련관 등의 시설이 갖춰져 있다. 입장료 어른 2,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 산림문화관 휴양관 12평형 80,000원, 16평형 10만원, 숲속의 집 18평형 15만원. 비수기(9월1일~5월31일) 시설물(숙박시설 포함) 30% 할인, 5일 이상 시설물 이용시 40% 할인, 숙박시설 사용시 입장료 50% 할인. 예약 장수군청 산림문화관광과 063-350-2562 , 063-353-0855 (평일 09:00~18:00), 홈페이지 www.jangsuhuyang.kr/Banghwa1

논개생가마을


장계면 대곡리의 논개생가마을은 400여 년 전 범바위골에 사는 주달문이라는 학자가 이곳에 새 터를 잡아 서당을 차리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의암 주논개가 태어난 마을로서 이곳 주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마을 아래에 오동제를 막게 되어 마을이 물에 잠기게 되자 이곳에 생가를 복원하고 유적을 옮기게 됐다. 해발 600~700m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는 논개를 낳기 위해 공을 드렸다는 성황당이 마을 지킴이로 남아있다. 매년 정초가 되면 조탑과 노송 앞에 제수를 차려놓고 마을의 안녕을 비는 산신제를 지내고 있다. 주촌 마을은 현재 민속마을로 되어 있어 집들이 대부분 초가에 황토집으로 바뀌었다. 전화 063-350-2583 ~5, http://cafe.daum.net/nongaetown

장안 문화예술촌


계남면 궁양리 옛 장안초교에 조성된 장안 문화예술촌은 서예·서가·도예, 천연염색·한문학·국학 등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여 작업하는 공간이다. 이들은 작품활동 외에도 도시와 농촌문화를 연결하는 ‘도농교류학습’, ‘장안산 도깨비축제’ 등을 비롯해 우리 문화 보급을 위하여 천연염색·도예·서예·서각 등 각종 체험 및 문화학습도 진행하고 있다. 063-352-4560 , 010-4707-2493 .

장수 도깨비잔치마을


계남면의 장수 도깨비마을은 해발 450m 이상의 고지대에 자리한 산간마을이다. 궁양리(궁평·양지 마을), 가곡리(곡리·평지 마을), 장안리(원장안·희평·괴목 마을) 등 3개 행정 리에 7개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현지의 깨끗한 산촌 환경에서 고랭지 배추와 각종 채소류와 특용작물을 재배한다. 전화 063-352-5015 , 0308. www.dokkebi.org

블루새들 리조트


천천면 월곡리의 블루새들(Blue Saddle) 리조트는 국내외 각종 승마대회 개최가 가능한 국내 최대의 승마시설과 23km의 외승코스 등 승마장을 중심으로 한 레저 공간이다. 실내 승마장(기초훈련장, 멀티승마장) 2동, 실외 승마장(기초체험장, 야외승마장) 2동, 원형 승마장(초보자 승마체험장) 2동을 갖추고, 총 170두의 말을 소유하고 있다. 부대시설로는 실내·외 수영장, 불가마 체온관리실, 스킨스쿠버 체험장 등이 있다. 유스호스텔은 객실 37실, 양식당, 한식당, 대강당, 연회장 3개소 등을 갖추고 있다. 전화 063-350-8000 , www.bluesaddle.co.kr

논개 대축제


매년 10월 초에 의암공원 일원에서 열리는 의암 주논개 대축제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던진 논개의 애국충절을 기리는 행사다. 이 축제는 주논개의 애국충절을 기리는 촛불 진혼제를 시작으로 주논개 제례봉행, 논개선발대회 등이 이어진다. 또 인기가수 축하공연과 불꽃놀이, 레이저쇼, 난타공연 등이 이어진다. 부대행사로는 논개 점토아트와 논개 만화전시회, 장수사과 종이접기, 전통 민속놀이 체험 등이 열린다. 창작판소리 ‘논개’ 공연, 논개충절무 공연, 의암시화전, 논개고을 시낭송대회, 전국 한시백일장 등 예술행사도 펼쳐진다.

장수 경주마목장


장수군 명덕리에 있는 장수 경주마목장은 2007년 개장했다. 서울경마공원과 부산경남경마공원의 배후지원과 우수 국내산마 후기육성 강화를 위한 중추적 기능을 수행하는 이 목장은 내륙지역 생산농가 총괄지원을 통해 내륙 생산농가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경주마의 훈련과 우량 종마 생산에 기여하고 있다. 남덕유산 육십령을 끼고 있는 목장 내에는 마방 500개와 실내마장, 원형마장, 말 샤워장 등 무려 48동의 시설이 들어서 있다. 특히, 평면 경사주로 1.6㎞와 언덕주로 1.5㎞가 조성돼 지구력을 요하는 경주마 훈련의 최적지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이 목장은 경주마 생산농가에 대한 생산지원 역할을 수행한다.

장수온천


번암면 죽산리에 위치한 장수온천은 알칼리성 유황온천으로 국내 유황온천 중 유황 함유량이 가장 많은 온천이다. 거대한 암반지대에서 분출되는 용출수는 온도 34.7℃, pH9.34로 피부염·류마티즘·당뇨병 등의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 음용수로 사용할 경우 위장병환자에게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입욕료 대인 5,000원. 전화 063-353-5566 .

장수 사과


장수군 고랭지에서 나는 사과는 당도가 높으면서도 수분이 많아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품종별로 홍로는 추석 전인 9월 중순에 수확하며, 명월은 9월 말부터, 부사는 10월 말부터 딸 수 있다. 4월 말~5월 초에 열리는 사과꽃 축제 때는 염색·승마 체험 등도 할 수 있다. 장수읍 별헤는 마을(063-351-3201 ·star.invil.org)과 장계면 동동마을( 063-351-3077 ·dongdong.invil.org)에서 사과나무 묘목을 분양한다. 그루당 가격은 8만~12만원.

장수 사과랑 한우랑 축제


매년 추석 무렵에 장수읍 의암공원과 장수사과시험포, 농촌체험마을 등에서 열리는 ‘한우랑 사과랑 축제’는 장수의 대표 특산물인 사과와 한우를 홍보하기 위한 행사다. 장수 사과는 일교차가 커 당도가 뛰어나면서 육질이 좋고, 고랭지에서 자란 장수 한우는 전국 최고 품질을 자랑한다. 장수읍 사과시험포와 정보화마을 등에서는 사과를 직접 따보는 수확체험 행사를 진행한다. 오미자농장에서는 농축액 만들기, 과실주 담그기 이벤트를 한다. 이외에도 장수 도깨비 체험, 비누방울놀이, 허수아비 만들기와 전통 음악과 비보이의 만남, 재즈댄스, 개그 콘서트, 통기타 음악회 등 문화행사를 다채롭게 진행한다.

길에서 만난 별미


장수의 별미는 한우다. 공기 맑고 물 좋은 해발 500m 이상의 청정 고지대에서 자란 장수 한우는 전국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강원도에 태백 한우가 있다면, 이곳 전라도엔 장수 한우가 있다. 현재 장수엔 약 2만 마리의 한우가 있다.

장수 한우는 평균 23~25개월간 사육한 640kg 이상의 최상품만 출하한다. 물론 국립농산물검사소로부터 각종 심사를 거쳐 품질인증을 받는다. 위생적으로 사육해 항생물질·합성항균제·성장호르몬제·농약 등 유해물질이 검출되지 않는다. 이렇듯 장수 한우는 청정한 환경 덕에 스트레스 요인이 거의 없기 때문에 각 부위마다 적당히 쫄깃하며 씹히는 맛과 고소한 향이 자랑이다.

장수 한우는 읍내 장수축산업협동조합( 063-351-2022 )에서 구입할 수 있다. 또 장수읍의 하늘가득장수( 063-351-5757 ), 장계면의 한들회관( 063-351-1491 ) 등 장수 한우 전문점에 들르면 속지 않고 장수 한우를 맛볼 수 있다. 생등심 1인분(150g) 25,000원. 모듬(200g) 20,000원. 갈비탕 1인분 8000원

일정별 길라잡이


● 장계권 옛날 장계현 지역으로 장수 북쪽의 장계면·계북면·계남면 등 장수 북부권이다. 계북면엔 토옥동계곡·양악탑·정인승기념관, 장계면엔 정충신영정각·성관사 등이 있다. 계남면엔 장수의 대표 관광지라 할 수 있는 논개생가와 주촌민속마을을 비롯해 경주마목장 등이 있다. 천천면 북쪽으로는 맑은 금강 물줄기가 흘러간다.

● 장수권 장수 관광의 중심지로서 논개사당·장수향교를 비롯해 금강발원지 뜬봉샘, 절이 예쁜 팔성사 등이 자리한 장수읍이 중심이 된다. 장수읍에서 13번 국도를 타고 천천쪽으로 가다보면 타루비가 있는 타루공원, 블루새들리조트 등을 만난다.

● 번암권 물 좋고 공기 좋은 장수에서도 대표적인 휴양지로 꼽힌다. 장안산 군립공원의 지지계곡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방화동 가족휴가촌과 방화동 자연휴양림 등이 있다. 죽림정사는 백용성 조사 생가다. 압계서원·권희문 가옥·어필각 등이 있는 산서면도 이 권역에 넣는다.

일정짜기


● 당일 장수는 중부고속도로(구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덕분에 전국 주요 대도시에서 3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고, 면적도 그리 넓은 편이 아니라 중심 명소만 둘러본다면 가능한 일정이다. 논개사당과 논개생가를 빼놓을 수 없다.

● 1박2일 숙박은 와룡 자연휴양림, 방화동 가족휴가촌, 주촌 민속마을, 하늘내들꽃마을 등에서 하는 게 무난하다. 수도권 지역에서 접근했을 때의 추천 일정은 다음과 같다. 중부고속도로 덕유산 나들목~정인승 기념관~장계~타루공원~장수 의암송~논개사당~수분치~뜬봉샘~숙박(방화동 가족휴가촌)~죽림정사~지지계곡~논개생가~주촌 민속마을~장수 경주마목장~장수 나들목~귀가

● 2박3일 군립공원인 장안산, 팔성사를 품고 있는 팔공산 등 장수의 대표 산을 다녀올 수 있다. 봄날이라면 철쭉으로 유명한 백두대간의 봉화산을 빼놓을 수 없겠다.

교통


● 자가운전

수도권 경부고속도로→비룡 분기점→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산내 분기점→중부고속도로(구 통영-대전간 고속도로)→장수 나들목→19번 국도-(10km)→장수 <3시간 소요>

영남권 대구→88올림픽고속도로→함양 분기점→중부고속도로(구 통영-대전간 고속도로)→장수 나들목→19번 국도-(10km)→장수 <1시간30분 소요> / 부산→남해고속도로→진주 분기점→중부고속도로(구 대전-통영간고속도로)→장수 나들목→19번 국도-(10km)→장수 <2시간~2시간30분 소요>

호남권 전주→익산-포항 고속도로 장수 나들목→장수 <40분 소요> / 광주→88올림픽고속도로→남장수 나들목→19번 국도-(10km)→장수 <1시간30분 소요>

충청권 대전→중부고속도로(구 통영-대전간 고속도로)→장수 나들목→19번 국도-(10km)→장수 <1시간 소요>

강원권 춘천→중앙고속도로→대구→88올림픽고속도로→함양 분기점→중부고속도로(구 통영-대전간 고속도로)→장수 나들목→19번 국도-(10km)→장수 <4시간30분 소요>

● 고속·시외버스

서울→장수 남부터미널에서 매일 4회(09:20~14:35) 운행. 장계 15,100원, 장수 17,100원. 4시간 소요.

광주→장수 광주종합터미널( 062-360-8800 )에서 매일 8회(06:10~16:50) 운행. 요금 8,500원, 2시간 소요.

전주→장수 공용터미널( 063-270-1700 )에서 매일 18회(06:30~21:30) 운행. 요금 6,000원, 1시간30분 소요.

대전→장수 동부터미널(ARS 042-624-4451 )에서 매일 7회(07:55~17:50) 운행. 장계 7,600원, 장수 8,800원. 2시간30분 소요.

● 현지교통

장수→장계 시외버스터미널( 063-351-8889 )에서 매일 5회(08:15~17:20) 운행. 요금 1,200원, 20분 소요.

장수→번암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매일 30분 간격(07:20~20:00) 운행. 요금 1,700원, 직행 20분, 완행 1시간10분 소요.

장계→논개마을 시외버스터미널( 063-352-1514 )에서 1시간 간격(06:40~19:10) 운행. 요금 950원, 40분 소요.

장계→장안리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매일 6회(07:20~18:20) 운행. 요금 900원, 40분 소요.

천천→와룡 자연휴양림 천천 정류소( 063-352-0742 )에서 매일 6회(06:30, 11:10, 13:40, 16:25, 17:40, 19:10) 운행.

번암→원사암(방화동) 번암 정류소( 063-353-2614 )에서 매일 4회(6:30, 10:45, 16:05, 20:10) 운행.

숙식(지역번호 063)

● 장계권 논개생가가 있는 대곡리 주촌민속마을(353-5159)에 민박을 치는 집이 많다. 논개생가 앞에 논개생가식당(청국장· 352-7777 ), 참숯가마가든(돼지삼겹살·352-????) 등이 있다. 장계리에 명성여관(351-0156), 귀빈모텔(351-0031), 하얏트모텔(351-1501), 명덕리에 남덕유산관광농원여관( 352-5181 ), 계남면 장안리에 장수도깨비잔치마을(352-0308), 장안산관광농원여관(352-0308), 계남면 호덕리에 모텔승마(353-0555) 등이 있다. 폐교를 활용해 꾸민 하늘내들꽃마을(353-5185)은 숙박 손님에게 식사도 제공한다. 장계리엔 서울숯불갈비(돼지갈비· 352-2933 ), 모정(돼지고기보쌈·353-0123), 조선명가(곱창전골·352-8292) 등 식당이 많다.

● 장수권 장수읍 장수리에 광성여관(351-2317), 덕산장모텔(351-8880), 황토방모텔(351-0500) 등이 있다. 천천면 월곡리에 블루새들승마리조트(350-8000)를 비롯해 와룡 자연휴양림(353-1404) 앞엔 박수철민박(353-0027), 이재연민박(352-0888), 전만기민박(353-0531) 등이 있다. 식당은 장수군청 근처엔 논개고을(오리훈제·삼겹살·351-7940), 하늘가득장수(장수한우·351-5757), 교촌식당(추어탕·351-2330) 등 식당이 많다. 19번 국도가 지나는 수분치엔 수분령휴게소(순두부백반·353-0041)가 있다.

● 번암권 우선 방화동 가족휴가촌(350-2562~3)이 있다. 입구에 우경옥민박(353-5252), 박순숙민박(353-4486), 임종근민박(353-3595), 정대옥민박(353-3604) 등이 있다. 죽산리엔 장수호텔(353-5555)이 대표적이다. 번암면 소재지에서 최근 포장된 무령고개를 넘어가는 동화리엔 황금장여관(353-3158), 황인환민박(353-3158), 그리고 지지계곡에 유동욱민박( 352-3616 ), 정대일민박(351-5722), 조일제민박(353-4564) 등이 있다. 식당은 국포리의 산상콘서트(산상정식·353-7070), 노단리의 동화댐가든(다슬기수제비·353-103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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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지구촌장 블로그>:
<<장수군청 은행나무:

장수 천천면 봉덕리 느티나무를 보고 장수리 의암송을 찾았다. 장수리 의암송은 장수군청 현관 앞에 서있었고 군청 주차장 입구에는 노거수 은행나무가 보였다. 노거수 장수군청 은행나무 아래에 보호수 안내글이 보였는데 수령이 410년이라 적혔다. 그리고 전해오는 말로는 1570년경 최경회 장수 현감 부임 당시 식재되었다고 한다.

최경회는 화순 출신으로 옥구, 장수, 무장현감을 거쳐 영암군수, 영해부사, 담양부사를 지냈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우의병장(全羅右義兵將)이 되어 왜병과 싸워 공을 세웠고, 이듬해 경상우도병마절도사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6월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1746년(영조 22)에 충의공(忠毅公)의 시호를 받았다.

장수군청 은행나무 전라북도 장수군 호비로 10 장수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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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장수리 의암송(천연기념물 제397호) 천연기념물을 찾아서장수 장수리 의암송지정번호: 천연기념물 제397호수량: 1주지정(등록)일: 1998년 1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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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Journal & Essay the SCIENCE plus 2020-1-18>: <<은행나무가 탄력을 유지하고 장수하는 비결은:

문광주 기자 / 기사승인 : 2020-01-18 02:51:11

"노년에도 플라보노이드를 왕성하게 생성해 환경영향 무시해"

녹색 장수나무

은행나무는 1,000년 이상 살 수 있다.

연구원들이 나무의 장수 비결을 알아냈다.

오래된 은행나무는 생존에 중요한 조직을 위해 세포노화를 방지한다. 그들은 노년기에 놀라운 탄력성을 유지한다. 이런 식으로 오래된 나무들은 병원체나 가뭄과 같은 유해한 환경 영향을 무시하고 나이가 들더라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 은행나무는 천 년이상을 살아남는다. 노년에도 플라보노이드를 왕성하게 생성한다.

나무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생물 중 하나다.

그중 일부는 수백 또는 수천 년 동안 쉽게 살 수 있다. 우리 대륙에서는 주로 장수로 알려진 가문비나무와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들이다. 아프리카에서는 바오밥나무가 식물계의 장수나무대표자다. 아시아에 뿌리를 둔 진정한 장수나무는 은행나무(Ginkgo biloba)다.

원래 중국에서 자생한 이 나무는 오늘날 전 세계에 심어져 있으며 1천 년 이상 살 수 있다. 일부 표본은 3천 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오래된 식물의 비밀은 무엇일까?

"지금까지 나무의 긴 수명에 어떤 분자 및 대사 메커니즘이 있는지는 불분명 하다"고 중국 양저우 대학의 리 왕(Li Wang) 교수는 설명했다.

표본으로서의 은행나무

은행나무 같은 장수한 나무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과학자들은 이 나무 종의 건강한 표본을 조사했다. 어린 나무에서부터 최대 667년 된 나무가 대표로 포함됐다. 은행마누들의 성장고리에 대한 분석은 놀라운 것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수백 년이 지난 후에도 나무는 어릴 때보다 크게 느려지지 않았다. 씨앗의 광합성 능력, 잎 크기 및 품질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거의 변하지 않았다.

다음 단계에서 연구팀은 나무의 유전자 구성을 살펴보았다. 잎과 식물의 형성층 유전자 활동이 이 놀라운 현상의 기초에 단서를 제공할 것인가? 식물의 형성층은 나무와 나무껍질 사이의 성장층이다. 줄기세포로 구성되며 새로운 조직 발달에 중요하다.

노화 전에 무장?


특히 Wang과 동료들은 유전자 분석에서 RNA와 microRNA를 조사했다. 후자는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고 DNA의 특정 부분을 켜거나 끌 수 있는 짧은사슬 RNA 분자이다.

은행나무의 성장층에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세포분열 및 조직분화와 관련된 유전자가 덜 활동적임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오래된 은행나무는 어린 표본처럼 쉽게 새 나무와 나무껍질을 만들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노화의 과정에 결정적인 관련 유전자의 높은 활동성을 찾지 못했다.

이 단계에서 보통 세포는 분열을 멈추고 성장을 멈추거나 완전히 죽는다.

이것이 바로 연구팀이 오래된 잎으로 관찰한 이유다. 형성층의 노화 유전자는 젊고 오래된 나무에서와 비슷하게 활성화되었다.

놀랍도록 탄력

연구자들에 따르면, 은행나무 잎과 같은 개별 장기가 노화를 위해 감염되기 쉽다고 보고 있다. Wang과 동료들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의 평가는 오래된 나무가 여전히 건강한 상태에 있고 노화가 전체 식물 수준에서 나타나지 않음을 보여준다."

가뭄과 같은 극심한 기상 현상으로 죽을 확율이 질병보다 훨씬 높다. 그러나 은행나무는 이것과도 반대다. 나이가 들어도 더 많은 연구에서 알 수 있듯이 놀랍도록 저항력이 있다.

노년기에 건강


과학자들은 병원체 또는 다른 스트레스 요인에 대한 내성과 관련이 있거나 보호 화합물의 생성을 촉진하는 유전자가 모든 연령대의 나무에서 비슷하게 활동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오래된 나무조차도 여전히 많은 양의 플라보노이드를 생성한다. 이러한 이차 식물 물질은 무엇보다도 너무 많은 자외선으로부터 나무를 보호하거나 많아지는 것을 막는 기능을수행한다.

은행나무와 다른 장수나무는 두 가지 주요 전략을 추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중요한 조직에서 노화 과정을 피한다. 두 번째는 평생 동안 유해한 환경 영향에 대한 높은 수준의 저항력을 유지하므로 나이가 들어도 건강을 유지한다.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2020; doi:10.1073/pnas.1916548117)

출처 :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더사이언스플러스=문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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