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태 묘 출토 편지(李應台 墓 出土 便紙무엇인가?
 

 

 

 

 
원이 아버님께 올림, 조선시대 선조 19년(1586년) 음력 6월 1일 안동에 살던 어느 여인이 남긴 편지, 이응태(李應台, 1556~1586)의 부인이 세는나이 31살의 나이로 아내와 뱃속 아이를 남겨둔 채 요절한 그를 그리며 쓴 간찰  

1, <나무위키-2025-04-10>:
<<이응태 묘 출토 편지

최근 수정 시각
: 2025-04-10 06:52:39

분류
: 간찰ㅣ조선시대 여성의 저서ㅣ고성 이씨 참판공파ㅣ안동시 소재 국가유산


[<<
이응태 묘 출토 편지(李應台 墓 出土 便紙)>>]

[
목차]

1.
개요
2.
발견
3.
내용
4.
매체
5.
외부 링크

1.
개요

[유튜브-동영상-무료 시청]

미투리, 400년 전의 사랑을 말하다

https://youtu.be/E5yUzU-I6to

이응태
(李應台, 1556~1586)의 부인이 세는나이 31살의 나이로 아내와 뱃속 아이를 남겨둔 채 요절한 그를 그리며 쓴 간찰이다.

조선시대 선조
19(1586) 음력 61일 안동에 살던 어느 여인이 남긴 편지로 문학사, 여성사적으로 연구할 가치가 높다. 또한 이응태의 가문인 고성 이씨 문중에는 수백여 년간 문중 인물들이 썼던 수많은 친필 간찰들이 전해 내려오는데, 이중 이응태와 관련된 여러 편지들과 함께 대조하여 당시 경상도 지역 사회문화생활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료이다.

필사본이 아닌 친필 원본은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기 때문에 미국의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중국 국영
TV에서도 관련 방송을 통해 소개되었다. 미라 상태로 무덤에서 출토된 이응태의 할머니 일선 문씨(一善 文氏) 문계창(文繼昌)의 딸이나 그 외 가족들과는 달리 이응태 부인의 본명이나 기록은 전혀 남지 않았고, 부인이 묻힌 묘 역시 정확한 위치가 알려지지 않았다. 6년 뒤인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인해 그와 그의 아들이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으리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안동대학교 박물관에서 상설 전시하고 있다
.

2.
발견

1998
425, 경상북도 안동시 정상동에서 안동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발굴팀에 의해 무연고 묘지를 발굴하던 중 발견되었다.

당시 안동시 정상동에서는 택지 개발
[1]이 한창이었고, 이때 개발 구역 내에 있는 선산의 대대적인 묘지 이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안동대학교 측도 만일의 발견에 대비해 관련 유물 조사에 나섰다.

그런데 한 문중이 조상의 묘를 찾기 위해 돌아다니던 중 한 무연고 묘지를 발견한다
. 이후 고성 이씨 집안의 묘임을 확인하고 고성 이씨 문중들에게 이를 알렸다. 이윽고 묘지의 이장과 함께 발굴에 들어갔으며, 75점의 유물과 함께 이 이응태 묘 출토 편지가 발견되었다. 해당 무덤의 피장자는 이응태라는 사람으로 밝혀졌으며 그의 추정 신장은 185cm로 거구였다.

3.
내용

원문
[2]



현대 한국어
[3]

원이 아버님께 올림

병술년
[7]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 

자네 항상 나더러 이르되 둘이 머리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하여

나를 두고 자네 먼저 가시는가
.

나하고 자식하고는 누구에게 구걸하여

어찌하여 살라 하고 다 던지고 자네 먼저 가시는가
.

자네 날 향한 마음을 어찌 가졌으며

나는 자네 향한 마음을 어찌 가졌던가
.

매양 자네더러 한데 누워서 내가 이르되

여보
, 남들도 우리같이 서로 어여삐

여겨 사랑할까
? 남들도 우리 같은가?

하여 자네더러 이르더니 어찌 그런 일을

생각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
.

자네 여의고 아무래도 나는 살 수가 없으니

얼른 자네한테 가고자 하니 날 데려가소
.

자네 향한 마음을 이 생에 잊을 줄이 없으니

어떻게 해도 서러운 뜻이 그지없으니

내 이 마음을 어디다가 두고 자식 데리고

자네를 그리며 살까 하나이다
.

내 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자세히 와 일러 주소
.

내 꿈에 이를 보고 하실 말 자세히 듣고자 하여 이렇게 써넣네
.

자세히 보시고 나더러 일러 주소
.

자네 내 밴 자식이 나거든 보고 사뢸 것 있다며

그리 가시면 밴 자식이 나거든 누구를 아빠 하라 하시는가
.

아무리 한들 내 마음이나 같을까
. 이런 천지 같은 한이


<
윗부분>

하늘 아래 또 있을까
. 자네는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러울까
.

그지그지그지없어 다 못 쓰고 대강만 적으니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자세히 와 보이시고 자세히 일러 주소
.

나는 꿈에서 자네를 보리라 믿고 있나이다
. 몰래 모습을 보이소서.


<
첫부분>

하도 그지그지없어 이만 적나이다
.


1-
편지에서 이응태 부인이 배고 있던 아이의 이름 '워늬(원이)'가 등장한다. 고성이씨세보 1권 참판공파 962쪽에 이응태의 무녀독남으로 '이성회(李誠會)'가 등재되어 있는데, 동일인물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원이'는 정황상 태명인 듯하다.

2-
아내가 남편 이응태를 '자내(자네)'라고 부르는데, 이 시기엔 순우리말 '자네'가 상대를 동등하게 대할 뿐만 아니라 높이는 데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대 국어에서도 '자네'는 친구처럼 동등한 관계에서 쓰일 수 있지만 더 이상 상대를 높이는 표현은 아니며, 주로 아랫사람에게 쓰인다.[8][9]

3-'
샹해(항상, )'에서 ''이며, 'ᄎᆞᄉᆡᆼ'此生, '이승'을 뜻한다.

4.
매체

1-<
미투리>라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적이 있다.

[유튜브-동영상-무료 시청]

[안동MBC뉴스]원이엄마 애니메이션 외국인에 인기

https://youtu.be/1Ej8-YpyUX8

2-<
원이엄마>라는 제목의 뮤지컬로도 만들어졌다. 네이버 뉴스 : 뮤직씨어터 '원이엄마', 대구뮤지컬페스티벌서 특별상

[유튜브-동영상-무료 시청]

원이엄마편지와미투리ㅣKBS방송

https://youtu.be/KJ4sHIzcV2M

3-2018
310일 천상의 컬렉션에 방영되었다.

4-202075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이 편지를 다루었다.

5-소설가 조두진은 이 편지에서 모티브를 얻어 능소화: 4백년 전에 부친 편지를 집필했다.

6-웹툰 바리공주의 '비방' 에피소드도 이 편지와 관련이 있다. 해당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멋지고 다정한 남편을 얻고 싶어 함부로 비방을 썼다가 귀신을 잘못 불러들이는 바람에 혼쭐이 난 후 다시는 비방을 함부로 쓰지 않겠다고 맹세했는데, 후일 좋은 남편을 만나 행복하게 살았지만 남편이 곧 병으로 사경을 헤매게 된다. 그래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무당에게 비방을 한 번 더 청했는데, 그것이 바로 편지와 함께 출토된 머리카락 미투리였던 것. 즉 이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바로 이응태의 아내 원이 엄마였다는 결말이다. 그러나 결국 남편 무덤에 미투리와 편지를 함께 묻은 것으로 보아 비방이 완성되기 전에 남편이 세상을 뜬 모양.

5.
외부 링크

1-
향토문화전자대전: 이응태 묘 출토 복식

2-
향토문화전자대전: 이응태 묘 출토 미투리

3-
향토문화전자대전: 안동에서 세계인을 울린 450년 전의 사랑이야기

4-
두산백과: 이응태 묘 출토 복식

5-
두산백과: 이응태 묘 출토 미투리

6-
살아있는 한자 교과서: 420년 전의 편지

7-
네이버 지식백과: 머리카락으로 삼은 미투리, 원이 엄마 이야기

8-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원이 아버지께

[
참조-각주]

[1]
위치는 현재의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원과 대구지방검찰청 안동지청이 위치한 주택 지구로, 출토 지점은 현진에버빌 104동 서편이다.
[2]
출처1, 출처2. 원문에는 띄어쓰기가 없지만 가독성을 위하여 띄어쓰기가 임의로 사용되었다.
[3]
임세권 안동대 사학과 교수의 번역을 참고해 가독성과 원문의 느낌을 높이는 쪽으로 편집했다.
[4]
해당 문구는 뒷면에 적혀 있다.
[5]
시계 방향으로 90도 돌려 적혀 있다. 원문에서는 줄이 3줄 뿐이지만 본 문서에서는 가독성을 위해 5줄로 나누었다.
[6]
위아래가 뒤집혀 적혔다.
[7] 1586
, 선조 19
[8]
원래는 일반적인 명사였던 '계집', '' 등의 단어가 이제는 해당 대상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전락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순우리말보다 한자어를 더 품위 있고 높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점차 강해지면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9]
이 묘와 편지에 관하여 KBS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에서는 아내가 남편보다 손윗사람이었다고 잘못 해석하였는데, 이는 뒷면에 있던 "샹ᄇᆡᆨ"(현대어로는 상서=올림)이라는 문구를 빼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편지로부터 100여년 전 남편이 아내에게 쓴 안정나씨 묘 출토 편지에서도 '샹ᄇᆡᆨ'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므로 이것 하나만으로 판단하기에는 섣부른 감이 있을 수 있으나, 여하튼 당시 시대상을 고려했을 때 둘이 서로 상호 존중의 관계였다면 모를까 아내가 남편보다 우위에 있지는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2, <우체국과 사람들
-2012-06>: <<
인문학/문화

저승에 보내는
상사리
(上白)

원이 엄마의 편지


남편을 떠나보낸 여인이 자기도 곧 따라가겠다며 눈물을 흘린다
.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던 이는 떠나고 그녀는 지금 홀로 남았다. 조선시대 안동 양반 이응태(李應台1556~1586)의 무덤에서 발견된 원이 엄마의 편지내용이다. 그녀는 구구절절한 표현으로 남편과의 사랑과 이별을 편지로 써서 무덤에 넣었다. 조선시대 부부의 정을 원이엄마의 편지를 통해 살펴본다.

. 하영휘(가회고문서연구소장)

저승에 보내는 상사리
(上白)


2012.06


원이
워늬아버님께 상백上白〔상사리

자네 항상 날더러 이르되
둘이 머리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하여 나를 두고 자네 먼저 가시나? 나하고 자식하며 누가 분부하여 어찌하여 살라 하여 다 던지고 자네 먼저 가시는고?

자네 날 향해 마음을 어찌 가지며 나는 자네 향해 마음을 어찌 가지던고
?

매양 함께 누워서 자네더러 내가 이르되


이 보소 남도 우리 같이 서로 어여삐 여겨 사랑할까? 남도 우리 같은가?” 하여 자네더러 이르더니,

어찌 그런 일을 생각지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고
?

자네 여의고 아무래도 내 살 수 없으니
, 수이 자네한테 가고저하니, 날 데려 가소.

자네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 없으니
, 아무래도 서러운 뜻이 가이 없으니,

이내 맘은 어디다가 두고 자식 데리고 자네를 그려 살려뇨?’ 생각하나이다.

이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자세히 와서 이르소
. 내 꿈에 이 편지 보신 말 자세히 듣고자 하여 이리 써 넣네.

자세히 보시고 날더러 이르소
.

자네 내 밴 자식 나거든
보고 살겠다.’ 하고 그리 가시되,

밴 자식 나거든 뉘를
아빠하라 하시는고? 아무러한들 내 마음 같을까?

이런 천지가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을까
? 자네는 한갓 그리 가 계실 뿐이거니와, 아무러한들 내 마음 같이 서러울까? 끝도 없고 한도 없어 다 못 써 대강만 적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자세히 와 뵈고 자세히 이르소.


나는 꿈을 자네 보려 믿고 있나이다
. 몰래 뵈소서. 하도 끝도 한도 없어 이만 적나이다.

병술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



[<<그림
. 정윤미>>]

꿈에라도 만나보리라

옛날 경상도 안동 지방에 한 부부가 살았다
. 그들은 둘이 머리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맹세했다. ‘원이라는 아이를 낳고 또 부인이 아이를 가졌다. 부부는 사랑의 행복을 맘껏 누렸다. 함께 누워 부인이 남편에게 이 보소 남도 우리 같이 서로 어여삐 여겨 사랑할까? 남도 우리 같은가?”라고 물을 정도로 행복했다. 그러다가 귀신의 시샘이라도 받았던 것일까? 남편이 병에 걸려 서른 한 살의 나이에 저승으로 먼저 가버렸다. 낳아서 보고 살겠다.’고 한 유복자까지 남긴 채 말이다. 산이 높으면 골짜기도 그만큼 깊은 법이다. 잊을 수 없는 꿈같은 세월과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부인은 자네 여의고 아무래도 내 살 수 없으니, 수이 자네한테 가고저하니, 날 데려 가소.”라며 절규했다. “자네 내 밴 자식 나거든 보고 살겠다.’ 하고 그리 가시되, 밴 자식 나거든 뉘를 아빠하라 하시는고? 아무러한들 내 마음 같을까?”라고 한 대목에서는 읽는 사람의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초상 날부터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오던 울음이 장례 날이 되자 눈물은 마르고 말이 되었다
. 부인은 그 말을 편지로 써서 남편 주검의 품속에 넣어 주었다. 보낼 수밖에 없는 남편이라면 꿈에라도 만나보리라. 꿈에 만나려면 길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그녀는 이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자세히 와서 이르소. 내 꿈에 이 편지 보신 말 자세히 듣고자 하여 이리 써 넣네. 자세히 보시고 날더러 이르소.”라고 하여, 꿈에 나타나 이 편지에 직접 답하라고 요구했다. 이 편지가 바로 그 꿈길인 것이다.

초상을 당한 여인네가 곡하는 것을 어릴 적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 이 편지를 읽으며 자연스레 그 장면이 떠올랐다. 바닥에 퍼질러 앉아 손으로 바닥을 치며, 꺼이꺼이 곡하는 사이사이에 길게 빼어 읊조리는 사설이 끊어질 듯 이어지곤 했다. 가슴 속에 쌓인 한을 끊임없이 쏟아내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까무러칠 정도로 감정이 격앙되면, 주위 사람이 부축하여 방으로 옮기기도 했다.
이 편지의 사연이 바로 그 사설이다. 지은 글로는 이토록 진한 감동을 자아낼 수 없다. 사연이 하도 절절하여 행여 글맛이 상할까 가능한 한 원문을 살려 옮겼다.


[<<원이 엄마의 편지 국립안동대학교박물관 제공>>]

조선시대 부부의 사랑 보다


이 편지는
1998년 경북 안동시 정상동에서 택지조성을위해 이장한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함께 나온

자료로써 살펴본 결과 무덤의 주인
, 원이 아버지는 이응태(李應台1556~1586) 임이 밝혀졌다. 그런데 정작 이편지를 쓴 원이 어머니에 관해서는 알 수 있는 것이아무것도 없다. 족보에도 전혀 언급이 없어, 성마저도 알 길이 없다. 원이 어머니에 관한 단서라면 그녀가 남긴 편지뿐이다. 편지를 통하여 그녀에 관하여 한 번 생각해보자. 원이 어머니의 남편 이응태는 고성 이씨다. 고성 이씨는 안동 지역에서 대표적인 양반 중의 하나다. 따라서 그녀도 반가의 딸이었음이 분명하다. 당시 안동지방의 혼인은 양반끼리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또 이런 편지를 썼다는 사실도 그녀가 양반이었음을 말해준다. 대개 반가에서 어려서부터 교육을 받지 않고는 이런 글과 글씨를 쓸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편지의 사연을 보면 그녀는 감정이 풍부한 여자였음을 알 수 있다. 또 남편과 같이 누워 이 보소 남도 우리 같이 서로 어여삐 여겨 사랑할까? 남도 우리 같은가?”라고 한 것을 보면, 감정 표현에도 솔직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그녀의 풍부하고 솔직한 감정은 편지의 글씨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편지의 글씨를 찬찬히 음미해 보면, 소박하면서도 건강한 자연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원이 어머니의 모습도 이 글씨처럼 소박하고 건강하지 않았을까? 예로부터 추로지향鄒魯之鄕〔공자와 맹자의 고장〕’이라 불리어 온 안동. ‘안동하면, 보통 점잖고 근엄한 고장이라고 생각한다. 가서 보면, 실제 그러한 면이 적지 않다. 그런데 만약 ‘16세기 말, 임진왜란 직전 안동지방의 부부사이가 어떠했을 것으로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혹자는 어떻게 대답할까? 이 편지를 읽기 전에는, 부부사이에 남존여비가 엄격히 지켜졌을 것이다.’라고 대답하지 않았을까? 적어도 이 편지의 사연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조선시대 사회는 깊이 들여다보면, 정말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다. 그리고 그 아기자기한 재미는 이런 편지가 아니면 맛보기 어렵다.



이 보소

남도

우리 같이

서로

어여삐 여겨

사랑할까
?


남도

우리

같은가
?


이내 맘은

어디다가

두고

자식 데리고

자네를

그려

살려뇨
?>>

3, <우리역사넷>:
<<국문:
응태 부인의 한글 편지

당신이 늘 나에게 말하기를 둘이 머리가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시더니
, 어찌 나를 두고 당신은 먼저 가셨나요? 나하고 자식은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시나요?

당신은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졌고 나는 당신에 대하여 마음을 어떻게 가졌나요
? 매번 나는 당신에게 함께 누워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우리 같을까요?”라고 했는데, 어떻게 그런 일을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나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 빨리 당신에게 가고 싶으니 날 데려가 주세요. 당신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 없고, 아무리 해도 서러운 뜻이 한이 없어요. 이 내 마음속은 어디다 두고 자식을 데리고 당신을 그리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 편지를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
. 꿈에서 이 편지를 보시고 하는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 이렇게 썼습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일러 주세요.

당신
, 내 뱃속의 자식을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부르라고 할까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을까요. 이런 세상천지에 잔혹한 일이 하늘 아래 또 있을까요.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니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러울까요.

안타깝고 끝이 없어 다 못 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어요.
몰래 와서 보여 주세요. (하고 싶은 말이)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

원이 아버지에게 드림.


원문: 이응태 부인의 한글 편지





해설: 이응태 부인의 한글 편지

이 사료는 일명 원이 아버지께라고 불리는 한글 편지다. 1998424일 경상북도 안동시 정상동 택지 조성 공사를 하던 중 안동대학교 박물관 조사팀이 50여 점의 의복 자료와 함께 발견한 문서다. 당시 발굴된 이응태(李應台, 1555~1586)의 무덤에서는 모두 18종의 편지가 발견되었는데, 이 사료는 그 중 하나이다. 이응태는 고성 이씨(固城李氏), 이요신(李堯臣)23녀 중 둘째 아들이다.

이 편지는
1586(선조 19)에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며, 가로 58, 세로 34한지에 붓으로 써 내려갔다. 작성한 부인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편지 중 원이라는 아이의 이름이 등장하므로 원이 엄마로 불린다. 이 편지에서 원이 엄마는 한평생 같이 살자고 약속해 놓고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애잔하게 묘사하였다. 편지와 함께 미투리도 발견되었는데, 미투리는 삼이나 모시 껍질로 만든 신발을 말한다. 이 미투리는 원이 엄마가 병석에 있는 남편의 쾌유를 빌면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이 편지는
16세기 사회의 관행을 보여 주는 자료로도 잘 알려져 있다. 남편을 자내라고 표현한 것이라든지, 문장을 끝맺는 어투도 친구나 아랫사람에게 말하듯 ‘~‘~라고 한 것 등이 주목된다. 이들 표현은 동등한 입장에서 쓰는 어투로, 당시 여성들이 가정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가졌던 사회 모습이 반영되어 있다.

이런 모습은
16세기까지의 사회 관행과도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조선 사회는 건국 이후 가부장적인 종법(宗法) 질서를 정착시키기 위해 각종 법령 등을 제정하였다. 처첩(妻妾)의 분간이나 첩의 자식이 관직에 나아갈 수 없게 한 서얼 금고법 제정 등이 그 예이다. 그러나 당시 실제 사회 운영과 규범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다. 예를 들어 혼인의 경우 조선 전기부터 금지하였던 여러 명의 처를 두는 다처제나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들끼리 결혼하는 동성혼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17세기 전반기의 기록인 이수광(李睟光, 1563~1628)지봉유설에는 중국인들이 조선 사람의 동성혼을 비웃는다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였다. 남성이 여성과 혼인한 뒤에 처갓집에서 장기간 머무르며 생활하는 남귀 여가혼(男歸女家婚)의 관행도 사회적으로 확산되어 있었다.

이런 사회적 관행은 당시 족보 편찬에도 영향을 미쳤다
. 조선 전기에 간행된 안동 권씨(安東權氏)의 족보나 문화 유씨(文化柳氏) 등의 족보를 보면 몇 가지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친계의 성씨를 계속 기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유씨나 권씨의 족보임에도 계속해서 자신들의 성씨인 유씨나 권씨를 다른 성씨들과 함께 기록하고 있었다. 자녀의 기재 순서도 출생 순서대로 기록하고 있었다. 17세기 후반 이후 아들을 먼저 기록하고 이어서 딸을 기록하는 방식과는 차이를 보인다. 이는 인륜의 질서를 우선시하는 태도가 반영된 결과였다. 외손의 경우도 편찬 당대까지 모두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 결과 조선 전기에 간행된 족보에는 상당수 다른 성씨들이 등재되었다. 조선 전기의 족보를 친손과 외손을 모두 수록하는 자손보(子孫譜)로 평가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혼인 관행이나 족보에 나타나는 이러한 모습은 조선 전기 사회가 아직은 가부장적 유교 질서인 종법 질서가 확립되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 이런 모습은 제사 계승 및 재산 상속에도 영향을 미쳤다. 제사의 경우 자손들이 돌아가면서 제사를 담당하는 윤회 봉사(輪回奉祀)가 행해지는가 하면, 외손 봉사도 적지 않게 시행되었다. 재산 상속의 경우도 토지와 노비 모두 남녀 균분 상속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여성은 적지 않은 경제력과 함께 재산에 대한 처분 및 관리의 권한도 가졌다.

이 같은 사회 관행 속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삶을 확장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 이러한 모습은 성주 이씨(星州李氏) 이문건(李文楗, 1494~1567)의 손녀인 이숙희(李淑禧)의 생활에서 잘 나타나 있다. 이숙희는 1547(명종 2)에 태어났다. 어린 시절 병약하였음에도 6세 때에 할아버지 이문건에게 언문 교본을 써 달라고 요청할 정도로 공부에 대한 열망이 강하였다. 결국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언문이나 천자문, 삼강행실도, 소학등을 익히며 한문과 유교적 소양을 갖추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이숙희는 남성의 학문 세계를 넘나들며 소통하고 그들로부터 존중을 받으려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참고자료: 이응태 부인의 한글 편지

[참고문헌]

<논문>


1-김선경
, 공부와 경계 확장의 욕망: 16세기 여성 이숙희 이야기, 역사연구17, 역사학연구소, 2007.

2-
안귀남, 고성이씨이응태묘 출토 편지, 문헌과해석6, 문헌과해석사, 1999.

3-
이숙인, 조선중기 사회의 여성인식 -정절 개념을 중심으로, 한국문화46,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09.

4-이숙인, 조선전기 가족 담론 - 이념과 현실의 작용과 반작용, 국학연구47, 한국국학진흥원, 2022.

5-윤재흥, 조선시대 한글보급과 여성 - 한글편지(諺簡)를 중심으로 -, 한국교육사학44-4, 한국교육사학회.

<저서>

1-강명관
, 열녀의 탄생 -가부장제와 조선 여성의 잔혹한 역사, 돌베개, 2009.

2-김정경, 조선 후기 여성 한글 산문 연구, 서강대학교출판부. 2016.

3-박경, 조선시대 양반의 부부 생활과 이혼, 세창출판사, 2023.

<편저>

1-최재석
, 가족제도, 국사편찬위원회, 1994.>>

4, <매일신문-2021-01-16>: <<[안동을 걷다, 먹다] 16. 원이엄마와 월영교

디지털뉴스본부
imaeil@imaeil.com

매일신문 입력
2021-01-16 06:00:00

안동에 살기 시작했다
. 서울이나 대구 등 대도시에 비해 안동에 사니 편안하다. 안동은 좋다. 날마다 안동을 걷고 안동음식을 먹는다.

익숙한 그것들이 어느 날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 안동의 주름살이 보이기 시작했고 안동이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안동국시와 안동찜닭, 안동간고등어 혹은 헛제사밥의 심심한 내력도 내 귀에 속삭거리기 시작했다.

무심했던 안동에 대한 내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졌고 투박한 내 입맛도 호사스럽게 안동을 먹게 됐다
.안동에 대한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그냥 안동이야기다.

16
번째 이야기.
원이엄마와 월영교


[<<원이엄마의 편지>>]


사랑이 사라진 시대
, 사랑의 감각이 무뎌진 시대, 사랑이 부족하거나 혹은 사랑이 메말라 버린 시대다.

우리는 늘
'사랑한다'고 속삭이지만 인스턴트커피처럼 달콤하면서도 새털처럼 가벼워서 매일 한 잔씩 소비하고 버리는 종이컵같은 사랑일지도 모른다. 아니라고? 우리 시대의 사랑이 그렇게 가벼울 리가 없다고 우겨대지만 목숨보다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그런 사랑은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다.

날마다 사랑하고 헤어져도 내일은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나는 것이 일상이다
. 사랑을 소비하는 시대에 우리는 영화를 통해 <사랑과 영혼>을 느끼고 소설 속에서나 <사랑>을 읽는다.

그래도 요즘은 사랑하기 좋은 계절이다
. 첫 눈이 펑펑 내렸고, 교통정체가 짜증나고 집에 갈 일이 걱정되기는 해도 눈 내리는 풍경에는 마음이 설렌다.

오늘도 걷고 또 걸었다
. 걷는 것이 무슨 대단한 건강비법은 아니지만 코로나시대 정신건강을 유지하는 방법 중의 하나다.


오늘은 안동대교에서 시작해서 안동댐 쪽으로 향했다
. 강변 둔치는 걷기에 딱 좋은 길이다. 시베리아 한파가 사라진 오늘처럼 낮 기온이 영상 10도까지 치솟아 오른 날에는 마치 차가운 강바람도 봄바람처럼 느껴진다. 미세먼지만 없다면 금상첨화였다.

강변길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안동철교는 이제 폐로가 됐다
. 안동역이 이전하는 바람에 기차는 더 이상 이 다리를 지나지 않는다. 다리를 지날 때마다 꽥~하며 기적을 울리던 풍경을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조금 더 걸으면 인도교로 바뀐 옛 안동교가 나오고 그 옆으로 안동의 강·남북을 잇는 영호대교가 있다. 그 다음 만나는 다리가 영가대교로 안동의 신도시 '정하동'으로 통하는 길목이다. 법원과 한전 경북본부 등이 들어섰고 아파트 등 주거단지가 줄줄이 조성됐다
.



[<<원이엄마 테마공원의 조형물>>]


원이엄마 편지


500
년 전의 한 조선여인이 '원이엄마'라는 호칭으로 비련(悲戀)의 주인공이 등장하게 된 것은 정하동 신도시 택지 조성 때문이었다. 1998년 안동 신도시 택지개발지구 조성을 위해 주인없는 무덤을 이장하는 과정에서 '철성 이씨'라 적힌 명정(무덤에 덮는 천)이 발견됐다. 이에 고성 이씨 문중 입회 아래 발굴 작업이 이뤄졌다. 이 무덤의 주인은 서른 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이응태(李應台1556~1586)로 밝혀졌고 부장물 중에는 아내가 쓴 장문의 한글 편지와 '미투리' 한 쌍이 온전한 형태로 있었다.

무덤 속에 봉인돼 있다가
412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아내의 편지는 사랑하는 남편을 떠나보내는 젊은 아내의 절절한 심정이 담겨있어 사랑에 무심해진 우리 시대에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
원이엄마'는 아들 원이와 뱃속에 유복자를 둔 채 세상을 떠난 원이아빠를 그리며 가로 58, 세로 34의 한지에 붓으로 빼곡히 쓰다가 할 말을 다 쓰지 못한 것인지 한지의 위쪽 여백에도 돌아가면서 썼다.

조선여인이 사랑하는 남편의 호칭은
'여보''자기'가 아닌 자내'였다.

"
자내 샹해 날다려 닐오대 둘히 머리 셰도록 사다가 함께 죽쟈 하시더니 엇디하야 나를 두고 자내 몬져 가시노. 날하고 자식하며 뉘 긔걸하야 엇디하야 살라하야 다 더디고 자내 몬져 가시난고."(당신 늘 나에게 이르되, 둘이서 머리가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자식은 누구한테 기대어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시나요.)

우리가 결혼식에서 늘 듣던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사랑하겠느냐'는 말을 원이엄마는 '둘히 머리셰도록 사다가 함께 죽쟈하시더니 엇디하야 나를 두고 자내 몬져 가시노'라고 원망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구구절절이 담겨있다
.


[<<삼, 노 따위로 삼은 신>>]

※ <JDM-첨부-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여섯 날 내지 여덟 날에 총을 5060개 세워 바닥이나 총이 아주 정교하고 날씬한 형태이다. 마혜(麻鞋) 또는 마구(麻屨)라고도 하며, 재료로는 삼·왕골·청올치·백지·면사·견사 등이 사용되었다. 미투리는 재료나 만듦새에 따라 삼신·왕골신·청올치신·무리바닥·지총미투리 등으로 불렸다.

지총미투리는 종이를 꼬아서 총을 만든 것이고 무리바닥은 여덟 날로 만들고 바닥에 쌀가루를 먹여 만든
八經粉塗정제품이었다. 만든 곳에 따라 절에서 만들어 파는 것은 절치, 탑골의 장인들이 만든 것은 탑골치라 부르기도 하였다.

미투리는 선비들이 맑은 날 나들이에 신었으며
, 조선 말기에는 종이미투리와 미혼남녀의 장식신인 꽃미투리도 있었다. 성호사설유선(星湖僿說類選)에서는 왕골신이나 망혜(芒鞋)는 가난한 사람의 신이었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미투리도 신분에 따라 그 재료나 구조가 달라졌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미투리는 조선시대 서민층 상류계급에서 신었던 대표적인 신이라 하겠다.>>

이어지는 편지를 우리가 이해하기 쉽도록 옮겨본다
.

"...
당신이 나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고,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

'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 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수 없어요
. 빨리 당신에게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요.

이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
.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써서 넣어 드립니다
.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

이런 슬픈 일이 또 있겠습니까
?

당신은 한갖 그 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 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 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 몰래 와서 보여 주세요

하고 싶은 말
,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병술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 아내 올림



[<<원이엄마의 애틋한 사랑을 테마로 건립한 월영교>>]


서른 즈음의 젊은 아내가 사랑하던 남편을 떠나보내는 안타까운 심경이 구구절절 담긴 편지 한 장은 조선시대의 한 여인의 애틋한 사랑이 어쩌면 이토록 우리 가슴에도 와 닿는지 눈물이 난다
. 사랑이란 시간을 거스를 수도 있고 시대와 국경을 뛰어넘기도 한다.

현재 원이엄마의 편지와 무덤에서 발굴된 수의 등 부장품들은 안동대학교 박물관에 전시돼있다
. 그런데 안타까운 것이 무덤의 주인은 밝혀졌으나 편지의 주인공은 원이의 엄마라는 사실 외에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았다. 사랑을 잃은 가여운 이름도 모르는 조선의 여인이다.

그녀는 원이와 뱃속에 둔 아이까지 두고 떠난 남편을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만든 미투리 한 켤레도 삼아 넣었다
. 이 미투리를 싼 한지에도 한글 편지였으나 "이 신 신어보지도 못하고.."라며 미투리 한 켤레를 넣어 보내는 원이엄마의 안타까운 심경을 담은 글귀 외에는 확인할 수 없었다고 한다. 안동대박물관은 코로나10 확산에 따른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문을 닫았다. 코로나사태가 완화되면 박물관을 다시 열어 누구나 볼 수 있을 것이다.

원이엄마가 남긴 사랑가는 메마르고 퇴색한 사랑을 노래하는 우리 시대의 사랑에 경종을 울렸다
.

원이엄마의 편지가 발견된 무덤은 안동법원에서
500m 남짓 떨어진 언덕빼기에 지어진 '현진에버빌' 104동 자리다. 그 곳에서 멀지않은 영가대교 입구 사거리에는 원이엄마 테마공원이 있다. 공원 한켠에는 원이엄마의 편지가 조각된 비석이 박제된 사랑의 표상처럼 세워져있었고 동상으로 세워놓은 '원이엄마'는 저녁놀이 비치는 낙동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꽃피는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면 이 거리에는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필 것이다
. 이 공원에서 영호루가 있는 낙동강변 1km 거리는 능소화 거리다. 원이 엄마 그녀가 먼저 보낸 남편을 그리워하며 걸었을 그 길에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피고 질 때 우리는 다시 5백년 전 그 사랑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문득 나는 기형도의 시 한편이 떠올랐다
.


[<<월영대 바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우리 시대의 사랑표현보다 사랑에 대한 조선여인의 감성이 얼마나 가슴 저미는 아픔이었는지 새삼 느낀다
.

"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 주세요"라는 여인의 속삭임보다 더 절절한 그리움이 있을까.


<월영교>


[<<월영교의 설경
. 안동시청 제공>>]

월영교
(月映橋)에 도착했다. 달빛이 교교하게 비치는 월영교의 야경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안동호 하부 보조댐 호수를 가로지르는 월영교는 원래 있던 다리가 아니다
. 2003년 완공돼 개통된 국내 최대 길이의 목책 인도교다. 원이엄마의 애틋한 사랑을 기린다는 의미로 다리의 전체적인 형상을 원이엄마의 미투리를 모티브로 삼았다. 총 길이는 387m에 이른다. 다리 한 가운데에는 달빛이 비치는 정자라는 의미의 '월영정'(月映亭)이 있다. 동절기에는 동파방지를 위해 분수대를 가동하지 않지만 봄부터 가을까지 저녁에는 시원한 분수를 가동해서 색다른 재미를 주기도 한다.

사진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출사지이기도 하다
.

월영교 건너편 민속박물관 쪽 강변길은 원이엄마 테마길로 조성돼있어 작은 병
(상사병)과 사랑의 자물쇠를 걸어 영원한 사랑을 기원할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그러나 인근 박물관 매점에서 파는 상사병이나 자물쇠가 중국 유명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상술이 그대로 드러날 정도의 조악한 수준이라 관광객들의 호응이 없다.

오히려 호젓하게 산책을 원한다면 원이엄마 테마길에서부터 강변에 조성해놓은 나무데크 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보는 것이 더 좋겠다
.

아니면 원이엄마 테마길 바로 옆 언덕위에 있는
'석빙고''선성현 객사', 수몰지역에서 옮겨 놓은 초가집 등을 둘러보자. 안동 석빙고는 조선 영조 13(1737) 부임한 예안 현감 이매신이 지은 것으로 낙동강에서 많이 잡히는 은어를 왕에게 진상하기 위한 얼음을 저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석빙고>>]


[<<월영대 바위>>]


이 석빙고 바로 앞에 이끼가 낀 커다란 장방형의 바위가 하나 있다
. 바위에는 '월영대'(月映臺)라는 글자가 새겨져있는데 시기를 알 수 없는 아주 오래 전에 이 곳에 '금하재'라는 정자가 있었다는데 옛 선비들이 달빛을 바라보며 풍류를 즐기던 곳이었던 모양이다. 최근에 지은 월영교는 이 월영대에서 이름을 차용한 셈이다.

석빙고 옆에는 조선시대 건물 한 채가 있는데 안동댐 수몰지인 도산에서 이건해 놓은
'선성현 객사'
.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

5, <KBS 역사스페셜-400년 전의 편지, 조선판 사랑과 영혼-2020-5-20>: <<KBS 역사스페셜 400년 전의 편지, 조선판 사랑과 영혼

조회수
1,644,246회 최초 공개: 2020. 5. 20.

[유튜브-동영상-무료 시청]

KBS 역사스페셜 – 400년 전의 편지, 조선판 사랑과 영혼

https://youtu.be/Hxe_HTVlMhc

1998
424일 안동 고성이씨 묘에서 발굴된 400년 전 한글 편지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졌다.

죽은 남편이 자신의 꿈속에서라도 나타나 달라고 애원하는 여인의 편지들을 통해 당시의 남녀관계 등 생활상을 알아본다
.

역사스페셜
8400년 전의 편지, 조선판 사랑과 영혼 (1998.12.12.방송)

http://history.kbs.co.kr/.
>>

디지털뉴스본부
imaeil@imaeil.com

상기 자료는 흘러간 대한민국의 고대 역사의 진실을 밝히며 한민족의 문화를 발굴하여 전세계에 널리 선양하고 지나간 고대 우리나라의 줄기찬 역사를 되살려 앞으로 더욱더 발전하는 훌륭한 민족국가로서 재탄생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고조선 시대에 홍익인간의 이념은 민족과 국가주의를 뛰어넘어 빈부 격차가 없고 제한과 차별이 없는 전세게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미래의 세계적 평화의 상징이다. 지나간 역사를 철저하게 고증하고 확인하여 앞으로 닥칠 미래는 행복이 넘치는 지상낙원을 건설하겠다는 유태인들의 경전인 바이블의 내용과 일맥 상통한다. 과거를 돌이켜 보고 더나은 미래를 개척하는데 조금이 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글모음/ 약초연구가 & 동아대 & 신라대 대체의학 외래교수 전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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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고향 팔도강산에 올라온 <가나다순> 주제별 내용도 함께 감상해 보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1. 강선대 무엇인가?
  2. 계림사의 흰닭 무엇인가?
  3. 고사성어 무엇인가?
  4. 고조선과 왕검 조선 무엇인가?
  5. 광개토대왕비 무엇인가?
  6. 금강 무엇인가?
  7. 금강의 발원지 뜬봉샘 약초관찰여행 무엇인가?
  8. 금전초 무엇인가?
  9. 꽃말 모음 사전 무엇인가?
  10. 대한민국 의료역사 무엇인가?
  11. 도라지꽃의 유래 무엇인가?
  12. 도라지타령과 그의 깃든 전설 무엇인가?
  13. 독버섯 중독 무엇인가?
  14. 동의보감 무엇인가?
  15. 막걸리 무엇인가?
  16. 만석동의 용우물 무엇인가?
  17. 며느리발풀 꽃 무엇인가?
  18. 명태의 내력 무엇인가?
  19. 모반 양반과 사냥꾼 무엇인가?
  20. 무기질과 우리의 음식 무엇인가?
  21. 백령도 무엇인가?
  22. 백록담 무엇인가?
  23. 백학과 동래 온천 무엇인가?
  24. 버섯 용어 해설 대사전 무엇인가?
  25. 버섯의 이름 무엇인가?
  26. 보양처방 무엇인가?
  27. 북측말 대 남측말 무엇인가?
  28. 사고전서 무엇인가?
  29. 사랑과 자비의 무료민간요법 무엇인가?
  30. 산야초의 숨겨진 비밀 무엇인가?
  31. 삼성혈 무엇인가?
  32. 서복과 불사약 무엇인가?
  33. 선 바위에 깔리 중과 처녀 무엇인가?
  34. 수세보원 무엇인가?
  35. 신선이 바꿔준 색시 무엇인가?
  36. 약선요리 무엇인가?
  37. 영양소요법(영양성분표) 무엇인가?
  38. 오백장군 무엇인가?
  39. 용머리 바위 무엇인가?
  40. 유튜브 노래 모음집 무엇인가?
  41. 의방류취 무엇인가?
  42. 이응태 묘 출토 편지 무엇인가?
  43. 인체의 면역계 무엇인가?
  44. 인체의 신비 무엇인가?
  45. 인터넷 식물 종자도감 무엇인가?
  46. 읽어서 건강찾기 무엇인가?
  47. 전통민족의술 왜 박해하는가?
  48. 제주도 식물 무엇인가?
  49. 조선부 무엇인가?
  50. 주천석과 만산장 무엇인가?
  51. 중국의학대계 무엇인가?
  52. 처용랑과 망해사 무엇인가?
  53. 천연물질작용 무엇인가?
  54. 천연식물성농약 무엇인가?
  55. 천연약용식물학 무엇인가?
  56. 천하장사 오찰방 무엇인가?
  57. 한국의 멸종위기 보호 야생식물 무엇인가?
  58. 한국의 산(가나다순) 무엇인가?
  59. 한국의 산(지역별) 무엇인가?
  60. 한국의학대계 무엇인가?
  61. 할미꽃의 내력 무엇인가?
  62. 할으방당과 할망당 무엇인가?
  63. 해금강의 선남 선녀 무엇인가?
  64. 향약구급방 무엇인가?
  65. 호종단과 차귀섬 무엇인가?
  66. 효녀 심청 무엇인가?
  67. 효소 무엇인가?
  68. 흙의 비밀 무엇인가?
  69. 흥부와 놀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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