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용랑(處容郞)과 망해사(望海寺) 무엇인가?

삼국유사(三國遺事) 제 2권[일연(一然): 1206~1289년]

 

 

 

 

▶ 울산 지방의 개운포 전설과 처용 설화

[처용랑과 망해사

제 49대 헌강 대왕 때에 경주 서울로부터 동해 바다 어구에 이르기까지 집들이 즐비하고 담이 연이어 있지마는 초가집은 한채를 볼 수 없었고 길거리에는 피리소리, 노래소리가 그치지 않았으며 사철의 비바람마저 순조로왔다.

이에 대왕이 개운포[학성 서남쪽에 있으니 지금의 울주이다.]에 나가서 놀다가 돌아오는 길에 바닷가에서 점심참으로 쉬고 있던 중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끼여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왕이 괴상하게 생각하여 주위 신하들에게 까닭을 물었더니 천문을 맡은 관리가 말하기를

<<이것은 동해 용의 장난이오니 좋은 일을 해서 풀어 버려야 하겠습니다.>>


이에 해당 관리에게 분부해서 용을 위하여 그 근처에 절을 짓게 하였더니 그 명령이 내림과 함께 구름이 걷히고 안개가 흩어졌다.

그래서 그곳을
개운포[開雲浦: 구름이 걷힌 포구]라고 이름을 지었다.

동해 바다의 용이 기뻐하여 곧 아들 일곱을 데리고 임금이 탄 수레 앞에 나타나서 왕의 덕행을 찬양하면서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하였다.

그의 아들 하나가 임금을 따라 경주 서울로 들어와서 왕의 정치를 보좌케 되었는데 이름을 <처용(
處容)>이라고 하였다.

왕이 아름다운 아내로서 삼게 하여 그의 마음을 안착시켰으며 또한
<급간(級干)> 벼슬을 주었다.

그의 아내가 너무도 고왔기 때문에 역병 귀신이 탐을 내어 사람으로 변해서 밤에 그 집에 가서 몰래 데리고 잤다.

처용이 밖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와서 자리 속에 두 사람이 누운 것을 보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그만 물러나갔다. 그 노래에 이르기를

동경 밝은 달에
밤 이슥히 놀고 다니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구나
둘은 내 아내였고
둘은 뉘 아내인고
본디 아내다마는
빼앗는걸 어찌리.


이 때에 귀신이 처용의 앞에 정체를 나타내어 끓어엎드리면서 말하기를

<<내가 당신의 아내를 탐내서 지금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성을 내지 않으니 감복되고 아름다이 여기는 바입니다. 맹세코 이제부터는 얼굴을 그려 붙인 것만 보아도 그 문안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 나라 사람들이 문간에
<처용(處容)>의 형상을 그려 붙여서 나쁜 귀신을 쫓고 복을 맞아 드리는 것이다.

왕이 돌아온 후에 즉시로
영취산[霊鷲山] 동쪽 기슭에 좋은 자리를 잡아 절을 지었는데 <망해사(望海寺)>라고도 하고 또는 <신방사(新房寺)>라고도 불렀으니 이는 용을 위해서 만든 것이다.

또 헌강왕이
<포석정(鮑石亭)>에 나갔더니 남산의 산신(山神)이 임금 앞에 나타나 춤을 추었다. 왕의 측근자들은 못보는데 왕만은 이것을 보았다.

그가 앞에 나타나서 춤을 추는대로 왕은 이것을 시늉내어 자신이 춤을 추어 보였다.

그 귀신의 이름을 <상심(象審)>이라고도 하므로 지금까지도 우리 나라 사람들이 춤을 전해오면서 <어무상심(
御舞祥審)>이라고도 하며 혹은 <어무산신(御舞山神)>이라고도 한다.

혹은 이르기를 원해 그 귀신이 나와서 춤을 출 때에 그 모양을 <자세히 본떠> 조각 쟁이를 시켜 그대로 새겨 후대에 보였기 때문에 상심<象審: 본을 자세히 뜸>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혹은 또 상염무(
霜髯舞: 흰수염춤)라고도 하니 이것은 그 형상에 따라서 이름 지은 것이다.

또 왕이 금강령에 갔을 때에 북악귀신이 나와서 춤을 추었는데 그 이름을 <옥도금(
玉刀鈐)>이라고 하였다.

또 <동례전(
同禮殿)>에서 연희를 할 때에 지신이 나와서 춤을 추었는데 그 이름을 <지백급간(地伯級)>이라 하였다.

어법집에 이르기를

<<이 당시 산신이 임금 앞에서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불러 <지리다도파도파등자(
智理多都波都波等者)>라 하였으니 대개 지혜로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뻔히 알고서도 많이 도망하여 도성안에 장차 결단난다는 뜻을 말한 것이다.>>

이는 지신이나 산신들이 나라가 장차 망할 줄을 알고 일부러 춤을 추어 경계한 것인데 나라 사람들이 그를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길할 징조가 나타났다 하여 유흥에만 더욱 빠졌었기 때문에 나라가 마침내 망하고 만 것이다.

[주해(注解)]


개운포[開雲浦]는 지금의 경상남도 울산 지방.

급간(級干)은 신라 관등 9품인 급벌찬의 별칭.

정월 보름날의 행사인 <제웅> 풍습의 기원.

영취산[霊鷲山]은 울산 지방에 있다.

포석정[鮑石亭: 신라때 경주 남산 아래 있는 임금의 놀이터].

[해제]


<전기설화집 110~113면>:
<<이 설화는 개운포 전설과 관련되어 있으며 또한 처용가의 창작 동기를 설명하여주는 설화로서 되어 왔다.

그리고 또한 이것은 옛날 사람들 속에 있었던 처용의 모습을 집의 문에 그려붙여 역신을 쫓던 민속의 기원을 알려주는 설화로도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설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옛날 처용 놀이 내지 처용무의 유래와 기원을 알려주고 있는데 있다.

이 설화는 다음 항목에서 보게 될 어무상심(御舞祥審) 춤, 북악신(北岳神) 춤, 지신(地神) 춤과 함께 헌강왕 당시의 왕을 위수로 한 지배통치 계급의 부화타락한 생활을 풍자폭로하는 민간 출신의 탈춤군들에 의하여 창조 상연된 여러 가지 형태의 탈춤들의 발생 기원들을 신비화한데서 생겨난 것들이다.

이 설화들을 통하여 우리는 이 탈춤들이 그의 연기법이나 예술성에 있어서 대단히 높았음을 알 수 있다. 고대 사람들은 마치 이 춤들의 연기자들을 그 어떤 바다 신령이나 산신령 또는 지신의 출현으로 간주하였던 것이다.

특히 처용무, 처용놀이와 관련하여서는 많은 전설이 있고 또한 매우 오랜 역사 기간을 통하여 발전하면서 우리 고대 예술의 확립과 풍부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세종실록 지리지(世宗實錄 地理志)> 경상도 울산 항목속에 있는 처용암(處容岩)이란 기사에는 다음과 같이 씌여 있다.

<읍내 남쪽 37리 되는 개운포 가운데 있다. 세상에 전해오는 말이 신라때 이 바위 위에 사람이 나왔는데 생김이 기괴하고 춤과 노래를 좋아하였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처용노인이라고 불렀다. 지금도 우리 나라 음악에 처용놀이라는 것이 있다.>

이러한 설화들과 함께 처용놀이, 처용무의 상연과 관련하여서는 신라 및 고려의 여러 문인들의 시작품들에 적지 않은 관극시(연극을 관람하고 지은시)들이 있음을 또한 첨부하여 말할 수 있다.

이 설화들은 당시 통치 계급들의 부화방탕한 생활을 폭로하면서 멸망을 경고하는 내용으로 된 민간출신의 예술인들에 의한 각종 탈춤들을 신비화 하고 설화화한데서 생겨진 것들이다.
>>.]

지금부터 1206~1289년에 생존한 승려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기록된 <처용랑과 망해사> 원본은 다음과 같다.

[
處容郎 望海寺

第四十九憲康大王之代 自京師至扵海内 比屋連墻. 無一草屋. 笙歌不絶道路 風雨調扵四時. 扵是大王逰
開雲浦[在䳽城西南今蔚州.].

王将還駕. 畫歇扵汀邊. 忽雲霧冥 曀迷失道路. 恠問左右 日官奏云 “此東海龍所變也冝行勝事以解之.” 扵是勑有司 為龍刱佛寺近境. 施令已出 雲開霧散. 因名開雲浦. 東海龍喜 乃率七子現扵駕前 讃徳獻舞奏樂. 其一子隨駕入京 輔佐王政 名曰處容. 王以羙女妻之 欲留其意 又賜
級干職. 其妻甚羙 疫神欽慕之 變無(爲)人夜至其家 竊與之宿. 處容自外至其家 見寢有二人 乃唱歌作舞而退.

歌曰. 東京明期月良夜入伊逰行如可入良沙寢矣見昆脚烏伊四是良羅. 二肹隠吾下扵叱古二肹隠誰支下焉古. 本矣吾下是如馬扵隠奪叱良乙何如為理古. 時神現形跪扵前曰 “吾羡公之妻 今犯之矣. 公不見怒 感而美之. 誓今已後 見畫公之形容 不入其門矣.” 因此國人門帖
處容之形 以僻邪進慶. 王旣還 乃卜霊鷲山東麓勝地置寺. 曰望海寺. 亦名新房寺 乃為龍而置也.

又幸
鮑石亭 南山神現舞扵御前. 左右不見 王獨見之. 有人現舞扵前王自作舞 以像示之. 神之名或曰祥審. 故至今國人傳此舞 曰御舞祥審 或曰御舞山神. 或云 旣神出舞 審象其皃命工摹刻 以示後代 故云象審. 或云霜髯舞 此乃以其形稱之. 又幸扵金剛嶺時 北岳神呈舞 名玉刀鈐.又同禮殿宴時 地神出舞 名地伯級
干. 語法集云 “于時山神獻舞 唱歌云. <智理多都波都波等者>盖言以智理國者 知而多逃 都邑将破云謂也.” 乃地神山神知國将亡 故作舞以警之. 國人不悟 謂爲現瑞 耽樂滋甚 故國終亡.]

[<처용무과 관련된 유튜브 동영상 감상>]


1,
KBS 역사스페셜 – 귀신 쫓는 사나이 처용의 정체는?=최초 공개: 2020. 3. 9.

≫≫
https://youtu.be/yXFAo03e-8c

2,
[ENG SUB][TV 악학궤범] 12. 처용무=2015. 1. 9.

≫≫
https://youtu.be/wDZ9rfqEFpI

3,
국립국악원 토요명품공연 03. 처용무=2016. 5. 19.

≫≫
https://youtu.be/drS4Rq_E4eE

4,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 처용무 ver.Kor=2018. 11. 15.

≫≫
https://youtu.be/aWYzo9Mx-aE

5,
[ubc울산방송] 161002 처용은 누구? "관용의 상징"=2016. 10. 10.

≫≫
https://youtu.be/-YifA8eBfGQ

처용의 전설과 관련하여
최근 들어선 서역인이란 설이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신라 원성왕의 무덤인 경주 괘릉 앞에 있는 서역 무인석상. 높은 코와 깊은 눈, 한눈에 봐도 우리나라 사람과는 달리 생겼는데, 악학궤범에 나온 처용의 모습과 상당히 닮았다.

"눈이 깊고 코가 크고 턱이 주걱턱입니다.

처용은 은근하게 웃고 있어요. 관용을 담은 미소를 담고 있어요."

여기에다 페르시아 서사시인 쿠쉬나메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멸망한 페르시아 왕자가 신라로 망명해 신라 공주와 결혼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전체 내용의 절반 가까이가 신라에 관한 얘기다. 특히 헌강왕이 처용을 경주로 데려가 높은 벼슬을 주고 신라 여인과 결혼하게 하는 내용이 처용설화와 매우 흡사하다.

"신라사회에 기여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신라 부인을 얻어서 정착해서 한국문화와 외래문화가 자연스럽게 접목하는 구도를 갖고 있다. 설화구조가 굉장히 닮아있다."


우리 조상들은 현재 울산에 있는 개운포 전설과 역신, 처용무라는 춤을 통하여 천연두와 같은 그 당시 무서운 전염병 등을 물리치는데 각종 신들을 통하여 낫고자 하는 열망을 잘 나타내 보이고 있다.

(글/ 약초연구가 & 동아대 & 신라대 대체의학 외래교수 전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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