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복(徐福)과 불사약(不死藥) 무엇인가?

고대 진시황의 신하 서복이 다녀간 제주도

 

 

 

 

 

 

 

 


 

 

 



 

 

 

[진시황의 신하 서복이 다녀갔다는 뜻의 제주도 정방폭포 아래 <서불과지(徐市過之)>, <서복전시관>의 모습, 사진 출처: jdm필자 제주도 방문 직접 촬영]

제주도 남제주군 서귀읍 서귀리 정방폭포

제주도는 지리학적으로 약 120만년 전부터 2만 5천년 전까지 5단계의 화산활동에 의하여 형성된 섬이라고 한다. 제주 섬에 사람이 거주하게 된 것은 선사시대 유적 발굴에 의하면 약 1만년 전부터 사람들이 살았다고 하는데, 그 역사 만큼이나 제주 섬사람들의 이야기가 구구절절하게 구전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는 것은 탐라국 제주도가 과거에는 주권 국가였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이제 21세기 제주도는 세계자연유산 유네스코 등재를 계기로 전세계인 모두가 태어나서 꼭 한번 가 보고 싶은 "평화의 섬" 제주를 향해 힘차게 도약하고 있다.

이제 환상의 섬 제주도의 <
서불(徐市)과 불사약(不死藥)>대한 기막힌 설화에 대해서 박영준의 <한국의전설>에서는 진시황제의 총애를 받는 서불(서복=徐福=xú fú=, 서시 라고도 함)이 다녀간 내용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서복(徐福)과 불사약(不死藥)

제주도 남제주군 서귀읍 서귀리 정방폭포

제주도 서귀포 정방 폭포의 바위벽에
<서복과차(徐福過此)>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중국의 진시황은 만리장성을 쌓고 스스로 황제라 하고 갖은 압정(壓政)을 펴고 수 많은 미희들에게 둘러쌓여 나날을 보냈는데 그도 죽음의 손길은 피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진시황의 총신(寵臣) 가운데 서시(徐市=서복)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하루는 서시가 넌지시 진언을 하였다.

『황제 폐하, 요즘 폐하의 용안에 웬지 수심이 깃드신 것 같사온데, 어인 연고로 그러하시옵나이까?』

서시가 이렇게 물었으나 진황은

『경에게 말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오.』

하고, 말했다.

『폐하, 소신의 공연한 근심인 줄 아옵니다, 어인 일인지 폐하의 기력이 전만 못하신 것 같사옵니다. 그리하여 소신이 폐하를 위하여 한 가지 청원을 드려볼까 하옵니다.』

『어디 말해 보라.』

진시황은 자기가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서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폐하, 소신이 알기로는 바다 건너 조선국엔 기이한 약초가 난다고 하옵는데, 그 약초는 어떠한 병이라도 물리칠 수가 있으며, 또한 병이 없더라도 그 약을 먹기만 하면 어떠한 병에도 걸리지 않는다고 하옵니다. 그러나.』

『어떠한 병에도 걸리지 않는 약이 있다구?  그런데 어떻단 말인가?』

『그런데 그것을 구하고자 하면 반드시 천 년 묵은 고목으로 배를 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 혼례를 치르지 않은 남녀 3000명을 데리고 가야 약초를 캐낼 수가 있다고 하옵니다.』

『흠, 그것이 무엇 어렵겠느냐?  그런데 과연 그 약초를 먹으면 늙지 않고 죽지도 않을까?』

『그렇사옵니다.  삼신산(三神山)에서 나는 불로초(不老草)를 복용하면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고 하옵니다.』

『알았노라.  그러면 그대는 곧 출발할 차비를 하도록 하라.』

이리하여 서시는 곧 준비에 착수하여 곤륜산(崑崙山)에서 천 년 묵은 아람들이 고목들을 베어다 석 달 열흘 동안 배를 만들고, 동남동녀(童男童女) 3000명을 뽑았다.

이윽고 출발 전날 항해의 무사를 비는 큰 제사를 올렸다.  

진시황은 안색이 활짝 펴지고 매우 기뻐했다.

서시는 흐믓해하는 황제를 보고 약간 걱정이 되기도 했다.

<만약 약초를 구하지 못한다면...... 。>

단순한 체면문제가 이나라 목숨에 관한 문제였다.
그러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약초를 구해 내야 하겠다고 결심했다.

『폐하, 빠른 시일 안으로 불로초를 구해 오겠사옵니다.』
중국을 떠난 서시는 3000명의 동남동녀를 거느리고 제주도의 조천포에 배를 대었다.

『아, 여기가 조선국의 최남단이며 가장 큰 섬이로다.』

서시는 자못 감개어린 목소리로 일동을 돌아보며 분부했다.

『자, 모두들 배에서 내려서 짝을 지어 불로초를 찾아 내어라!』

3000명의 선남선녀들은 뿔뿔이 헤어져서 불로초를 구하느라고 혈안이 되었다.
이윽고 헤어졌던 남녀들은 각자가 구한 약초를 가지고 왔다.

그러나 그들이 가져온 약초는 모두 신선의 열매라고 하는
<암고란(巖高蘭)>이었다. 암고란은 다른 이름으로 <시로미>라고도 부르는데 이것이 여러 가지 질병에 특효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불로장생의 영약은 아니었다.

서시는 몹시 실망했다. 그러나 어쨌든 좀더 찾아 보아야 할 일이었다.  

『가자, 좀 더 동쪽으로!』

서시는 동남동녀들을 데리고 서귀포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어서 여러 달 동안을 약초를 구하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중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 때 우리나라 고유의 산삼이 중국으로 건너가게 되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산삼을 불로초로 오인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





[진시황(秦始皇: 기원전 259년 ~ 기원전 210년=향년(享年)=50)의 약력(略歷)]

1,
<백도백과(百度百科)>: "진시황(秦始皇=qín shǐ huáng=V후앙: 259210=50), 영성(嬴姓),조씨(赵氏),명(名: 정=政=zhèng=)又名: 조정(赵正=zhào zhèng=자오)(정=政), 진정(秦政)或称 조룡(祖龙) [1-2] 秦庄襄王之子[3] 中国历史上著名的政治家战略家改革家完成华夏大一统的铁腕政治人物也是中国第一个称皇帝的君主[4]

秦始皇是出生于赵国都城邯郸今邯郸),并在此度过了少年时期24713岁时即王位[5] 23822岁时在故都雍城举行了国君成人加冕仪式开始亲理朝政除掉吕不韦嫪毐等人[6] 重用李斯尉缭自前230年至前221先后灭韩齐六国39岁时完成了统一中国大业建立起一个以汉族为主体统一的中央集权的强大国家——秦朝并奠定中国本土的疆域[4]

秦始皇认为自己的功劳胜过之前的三皇五帝采用三皇之五帝之构成皇帝的称号[7] 是中国历史上第一个使用皇帝称号的君主所以自称始皇帝同时在中央实行三公九卿管理国家大事地方上废除分封制代以郡县制同时书同文车同轨统一度量衡对外北击匈奴南征百越修筑万里长城修筑灵渠沟通水系

但是到了后期求仙梦想长生苛政虐民扼杀民智动摇了秦朝统治的根基210秦始皇东巡途中驾崩于邢台沙丘[8]

秦始皇是中国历史上一位叱咤风云富有传奇色彩的划时代人物是中国历史上第一个大一统王朝——秦王朝的开国皇帝对中国和世界历史产生深远影响把中国推向大一统时代奠定中国两千余年政治制度基本格局被明代思想家李贽誉为千古一帝” [9] [4]

본명(本名): (嬴): 정()

별칭(别称): 조정(赵正), 조룡(祖龙), 시황제(始皇帝), 진시황(秦始皇: 진왕조의 첫 번째 주권 황제란 뜻)

소처시대(所处时代): 진조(秦朝)

민족속군(民族族群): 화하족(华夏族)

출생지(出生地): 조국감단(赵国邯郸: 금하북성감단시:今河北省邯郸市)

출생시간(出生时间): 공원전(公元前) 259()

[기본신식(基本信息)]

본명(本名): (嬴: 정=)

별칭(别称): 조정(赵正), 조룡(祖龙), 시황제(始皇帝), 진시황(秦始皇)

소처시대(所处时代): 진조(秦朝)

민족속군(民族族群): 화하족(华夏族)

출생지(出生地): 조국감단(赵国邯郸: 금하북성감단시:今河北省邯郸市)

출생시간(出生时间): 공원전(公元前) 259()

거세시간(去世时间): 공원전(公元前) 210()=향년(享年)=50

주요성취(主要成就): 통일6(统一六国) ; 남평백월(南平百越), 북격흉노(北击匈奴)건립황제제도(建立皇帝制度)수건만리장성(修建万里长城)

서세지(逝世地): 사구(沙丘)

릉침(陵寝): 려산릉(骊山陵: 금서안시림동구하하촌:今西安市临潼区下河村)."

2, <W 2014 1/1 4면>:
"
죽음을 정복하려는 인류의 투쟁:

진시황은 연금술사들에게 죽음을 막아 주는 묘약을 찾아내라고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만든 약물 중 상당수에는
독성 물질인 수은이 들어 있었으며, 진시황은 그러한 약물 중 하나를 먹었기 때문에 사망한 것 같습니다.
"

3, <A 2005 12/8 21면>
: "
고분—고대 신앙의 전시장:

1974년에 중국 시안(西安) 시 인근의 농부들은 우물을 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발견한 것은 물이 아니라 흙으로 만든 인물상의 파편, 활의 일종인 청동 쇠뇌, 화살촉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2100년 된 진시황 병마용(兵馬俑)을 발견한 것인데, 그 군대는 실물보다 크게 진흙으로 구워 만든 7000구 이상의 병사와 군마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모두 계급에 따라 일사불란한 군사 대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중국 최대의 황릉(皇陵)의 일부를 차지하는 이 진시황 병마용은, 기원전 221년에 전국(戰國) 시대를 끝내고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시황제릉은 사실상 하나의 지하 궁전입니다. 하지만 토용 군대가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진시황 병마용」(The Qin Terracotta Army)이라는 책을 저술한 장 원리는 그의 저서에서 시황제의 “능은 진 제국의 상징으로서, 진시황제가 죽은 후에도 생전에 누리던 모든 영화와 위력을 갖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현재 이 능은 400개에 달하는 인근의 무덤 및 구덩이와 함께 거대한 박물관의 일부가 되어 있습니다.

이 무덤을 만들기 위해 “70여 만 명의 인력이 제국 각지에서 징발되었다”고 장 원리는 말합니다. 공사는
기원전 210년에 시황제가 사망한 후에도 계속되었으며, 도합 38년간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시황제의 측근 역할을 하도록 매장된 것은 토용 군대만이 아니었습니다. 시황제의 후계자는 자식을 낳지 못한 시황제의 후궁들을 함께 매장할 것을 명하였으며, 그 결과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사망하였다고 역사가들은 말합니다. 그러한 관습은 결코 특이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

4, <A 1986 8/15 21-23
>: "만리 장성—한 황제의 꿈의 기념물:

그 일은 언젠가 해야 할 일이었다. 그 사람은 자기 집 주위에 하나의 벽을 쌓으라고 지시하였다. 그 사람은 황제였다. 그의 집이란? 중국 전역이었다! 하지만 이 군주는 누구였는가? 그리고 그러한 방벽을 건설하기 위해 그가 제국 전체를 동원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중국 역사에서 전국 시대(戰國時代)(기원전 403-222년)라고 불리는 기간을 살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기억할 점은, 때때로 역사적 사실과 전설을 분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중국은 작은 왕국들 즉 나라들로 나눠져 있었고, 그들 사이에 전쟁이 잦았다. 그러한 혼란에 더하여 북부 지역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무서운 “야만인들”은 끊임없이 비옥한 남부 대지의 소산물을 약탈하려 들었다. 여러 나라들은 자국을 방위하기 위해 성벽을 건축하는 일에 바빴다.

이러한 정치 싸움들이 일으킨 혼란 때문에 처음에는 진이라는 중국의 조그만 나라의 출현이 가리워져 있었다. 그러나 교양있는 중국인들의 비웃음을 사던 이 침략적인 나라는 점차적으로, 싸움을 벌인 왕국들 가운데 여섯 왕국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왕국들을 정복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기원전 246년에 왕 세자인 <정>이 13세의 나이로 진 나라의 통치권을 계승하였다. 그는 자기의 철권 통치 아래 통합된 한 제국을 구상하였으며, 지체없이 다른 왕국들을 쳐부수었다. 기원전 221년경 중국 나라들 중에서 마지막 나라가 진 나라의 군대에게 무너지고 말았다. 마침내, 진 나라의 왕은 과거의 중국 왕들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한 일을 이룩해 낸 것이다. 그는 중국 전대륙의 군주가 된 것이다! 이 환희에 넘친 <정> 왕은 자신에게 새로운 칭호, 즉 ‘진시황제’란 칭호를 붙였는데, 이것은 <진왕조의 첫 번째 주권 황제란 뜻>이다.

'진시황제'는 자기의 제국을 통합시키기 위한 야망과
불로 장생하려는 이기적인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이었다. 한편으로, 그는 정치적 천재로 칭송을 받았다. 그는 중앙 집권식 정권을 확립하였으며, 중국 문자를 표준화시켰고, 통화 제도를 개혁하였고, 그의 수도성인 신양을 중심으로 방대한 도로를 건설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역사는 또한 이 사람에 대한 어두운 한면을 묘사한다. 진시황제는 죽음을 무서워하였다. 여러 차례의 암살 미수 사건은 그의 공포를 심화시켜 병적인 상태에까지 이르게 하였다. 그래서 그는 황제의 저택을 수십개 짓게 하여, 결국 수도 주위에서만도 270개나 지어서 터널로 연결하였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그 황제는 비밀리에 거동하고 매일 밤 다른 곳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한 황제의 꿈, 한 제국의 악몽


공식적인 중국 역사에 의하면, 진시황제는 기원전 214년에 그의 제국의 북쪽 국경선 전체에 장막을 칠 구상을 하였다고 한다. 이 황제가 흥분에 젖어 궁내 기술자들 앞에서 그의 장대한 최신 구상을 흥분스레 묘사하고 있는 것을 상상해 보라. 그는 ‘성벽을 하나 건축할 것이오!’라고 선언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성벽의 여러 부분은 높이가 약 7미터에 달하고, 꼭대기의 폭은 여덟명의 병사들이 옆으로 나란히 행진할 수 있을 정도로 넓게 만들 것이었다. 이 엄청난 과업의 임무는 진의 가장 탁월한 장수들 중의 한 사람인, 지칠 줄 모르는 멩천에게 맡겨졌다. 이 장수는 그의 주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 그의 군대를 동원하여, 평민들을 혹사하였다.

이 성벽은 표면상으로는 북부의 무서운 습격자들을 방어하기 위해 지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 성벽을 따라 적의 이동을 감시할 망대가 필요하였다. 그래서 멩천은, 기저부는 약 3.6평방 미터이고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들어 꼭대기는 약 2.7평방 미터가 되는 거대한 초소들을 건축하기 시작하였다. 궁수병들이 탑에서 성벽의 모든 부분을 방어할 수 있도록 그러한 초소들마다 활 쏘는 곳을 두 군데씩 따로 만들어 놓았다. 이 땅 전역의 산등성이와 계곡 입구에다 총 25,000개의 망대를 세웠다.

가능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멩천은 몰락한 이전의 나라들이 남겨둔 벽들과 탑들을 이용하여 그것들을 연결하였으며, 후에 중국인들은 그것을 만리(萬里)의 성벽이란 뜻인 만리 장성이라고 불렀다. (중국에서 1리는 약 2분의 1킬로미터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 성벽의 총 길이는 약 2,960킬로미터이었다. 후 세대들이 이 성벽을 여러 방향으로 더하고 연장하여 증축을 하였다. 「중국 재건」(China Reconstructs)의 보고에 의하면, 중국 정부가 “외진 지역 즉 산지에 있는 성벽들의 유적을 추적하여 실시한 가장 최근의 조사에서는 실제 길이가 약 10,000킬로미터가 된다”는 것이 밝혀 졌다고 한다.

성벽 일부의 기초는 길이가 약 4미터이고 폭이 약 1.2미터인 커다란 화강암 덩이들과 두께가 0.6 내지 1.5 미터에 달하는 돌로 되었으며, 16세기 명 왕조 시대의 기술자들이 사용한 것과 비슷한 건축 공법이 사용된 것으로 믿어진다. 벽 내부의 공간은 다진 흙으로 채웠고, 꼭대기에는 벽돌로 길을 만들었다. 벽은 서쪽으로 쭉 뻗어가면서, 돌이란 거의 볼 수 없는 방대하고 비옥한 평야를 가로질렀다. 그래서 건축자들은 구하기 쉬운 레스라고 하는 고운 황토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부분들은 젖은 황토를 목조 거푸집에 넣어 쌓아 올렸다. 그리고 어떤 부분들은 양쪽의 황토를 단지 깎아내고, 우뚝솟은 맨 흙담을 만들기도 하였다. 그러한 부분들은 오늘날 부스러기 더미 정도 밖에 남아 있지 않다.

만리 장성은 중국의 치솟은 산들을 오르고, 가장 깊숙한 계곡들 속으로 내리받고, 타는 듯한 황막한 평원을 가로질렀다. 동쪽에서는 뼈를 시리게 하는 찬 바람과 휘몰아치는 눈보라가 공사 인부들을 괴롭혔다. 서쪽으로는 무자비한 사막의 태양과 피부를 따갑게 쏘는 모래 폭풍이 건축 인부들에게 고통을 주었다. 이 성벽의 건축은 거의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여 고생한 수십만 노동자들의 고뇌를 대변해 준다. 일을 제대로 따라 해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굶주림과 시달림으로 인해 죽어간 사람들과 함께 산 채로 바닥의 도랑 속으로 집어 던져졌다. 약 400,000명의 사람들이 이 성벽의 건축 과정에서 죽어 매장되었으므로, 이 성벽은 “지상에서 가장 긴 공동묘지”라는 살벌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사망자들 가운데는 이 제국의 정치적 안정을 해치는 위험 인물로 낙인 찍힌 다수의 중국 지성인들이 포함되었다. 황제의 전면적인 개혁에 대한 이들의 봉건적 생각과 비평으로 인해 기원전 213년에는 그 악명 높은 ‘분서 갱유’ 사건이 발생하였고, 이 사건은 후세들에게 진시 황제에 대한 오명을 남기게 하였다. 오늘날까지도, 이 만리 장성의 건축으로 인명을 잃은 것을 애통해 하는 민요가 불려지고 있다. 실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왕조의 몰락


하지만 아직도 쉬이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남아 있다. 한 황제가 어째서 그처럼 엄청난 것을 추구하는 일에 고의적으로 그의 전 제국을 피폐시켰을까? 겉으로 보기엔, 방위가 그 목적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적어도 한 동안은 그것으로 유목민들을 효과적으로 격퇴시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잠깐 멈춰, 진 왕국—손이 미치는 곳은 다 정복한 천하 무적의 전투 왕국의 전성기를 회상해 보라. 이제 이 왕국은 어디로 그 활력을 돌출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이 황제는 유목민들보다도 그 엄청나게 흉용대는 자기의 군대를 더 두려워했을 것이다.

그렇다 하지만, 이 성벽 건축은 이 제국에 파멸적인 타격이 되고 말았다. 성벽의 남쪽에서는 반란군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 황제의 사치성 과업으로 무거운 세금이 부과되었기 때문에,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불로 장생하기 위해 그토록 필사적인 투쟁을 벌이던 그 사람도 기원전 210년에 죽고 말았다. 잇따른 권력 투쟁으로 이 제국은 몰락하고 말았다. 그 막강한 진 왕조도 기원전 221년에서 기원전 207년까지 불과 14년 밖에 존속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짧은 통치 기간 중에 중국의 가장 큰 사건들 중 몇 가지가 발생하였다.

진 나라가 인간의 최대의 강적인 죽음과는 싸워 이길 수 없었던 것처럼, 그 황제가 쌓게 한 원래 성벽의 알량한 유적들은 한 황제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혹사당한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찬사를 돌릴 수도 없다. 오늘까지 남아 있어 관광객들이 구경할 수 있는 이 만리 장성의 인상적인 부분들은 16세기에 명 왕조의 완리 황제가 건축한 것이다.

[23면 네모]
만리 장성은 얼마나 큰가?

□ 원래의 만리 장성은 쭉 펼치면 태평양에서 로키 산맥을 넘어 미시시피 강까지, 혹은 프랑스의 브르타뉴의 끝에서 북부 유럽을 거쳐 모스크바까지 이른다.

□ 만리 장성에는 적도에서 지구를 완전히 한 바퀴 돌아가면서—약 400,000킬로미터의 거리—높이가 2.4미터이고 두께가 0.9미터인 담을 쌓기에 충분한 자재가 들어 있다.

[22면 지도]
(온전한 형태의 본문을 보기 원한다면,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

몽고
중국
자위꽌 관문
린타오
옌먼꽌 관문
산하이꽌
한국

▪—진시황 통치 시대의 만리 장성

●—명 왕조 시대의 만리 장성.
"












[진시황의 초상화와 묘비, 옥쇄, 릉의 모형도, 릉의 내부, 병마용, 고대 진시황의 신하 서복이 한국과 일본을 왕래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도의 모습, 사진 출처: 대만 구글 이미지 검색]

시로미 무엇인가?

진시황의 신하 서복이 한라산에서 찾았다는 불로초 시로미

▶ 이뇨작용, 자양강장, 당뇨병, 괴혈병, 요통, 양기부족, 허약체질, 골절, 괴혈병, 진통제, 진경약, 진정약, 수렴약, 아픔멎이약, 열물내기약, 오줌내기약으로 오줌내기장애, 마비, 오랜질병으로 인한 전신무력증, 신경계통 질병, 전간, 두통, 꽃돋이가 있는 질병, 설사, 간질병, 콩팥염을 다스리는 시로미

시로미는 시로미과의 사철푸른 작은 떨기나무이다.

시로미의 학명은 <Empetrum nigrum L. var. asiaticum Nakai>이다. 시로미과는 북반구의 북부 고산 지역과 남아메리카의 고산 지역에 약 3속 7종이 분포되어 있고 우리 나라에는 1속 1변종이 자라고 있다.  

시로미는 봄에 잎겨드랑이에 자주색 꽃이 달리고, 여름에는 검은색 열매가 상큼한 맛을 낸다. 우리나라에서는 백두산을 비롯하여 북부의 높은 고산 산악지대와 남한에는 유일하게 한라산 정상 가까운 곳에서만 자라는 키작은 상록 관목이다. 줄기는 땅을 기고 가지는 약간 곧게 선다. 잎은 빽빽하게 나며 두껍고 윤채가 있는 창끝 모양이다. 잎은 길이가 5~6밀리이며 끝이 뭉뚝하고 톱니가 없다. 잎의 가장자리가 뒤로 말린다. 6월에 피는 꽃은 암꽃과 수꽃이 따로 잎 겨드랑이에 붙으며 양성 또는 잡성이다. 7~9월에 익는 열매는 검은색으로 둥근 모양의 장과이다. 열매는 맛은 달고 성질은 서늘하다. 생것으로 먹을 수 있다. 강장약으로 쓰며 괴혈병에 차처럼 달여 먹는다. 위장병, 당뇨병에 효험이 있고, 갈증에 효과가 있어 청량 음료수용으로 이용한다.  

시로미의 여러 가지 이름은
암고란[巖高蘭=yán gāo lán=까오: 대흥안령약용식물(大興安嶺藥用植物) ; 중국고등식물도감(中国高等植物图鉴)], 간코우란[ガンコウラン=岩高蘭: 일문명(日文名)], 시로미[제주도 방언] 등으로 부른다.

시로미의 효능에 대해서 북측에서 펴낸
<약초의 성분과 이용>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시로미(Empetrum nigrum L. var. asiaticum Nakai)

식물: 높이 10~20센티미터 되는 사철푸른 작은 떨기나무이다. 줄 모양의 잎이 어긋나게 붙는다. 보라색이 작은 꽃이 줄기 끝에 모여 핀다. 북부의 높은 산지대와 제주도(한라산)에서 자란다.

성분: 잎이 붙은 가지에 플라보노이드, 아스코르브산 4.68mg%, 안토시아니딘인 델피니딘-3-갈락토시드와 말비딘-3-갈락토시드가 있다.

지상부에는 안드로메도톡신, 탄닌질, 우르솔산이 있다.

열매에 아스코르브산 9~47mg%, 플라보노이드인 엠페트린, 프리물린이 있다. 잎에는 엘라그산, 카페산, 쿠에르세틴, 시아니딘, 켐페롤, 이소쿠에르시트린, 루틴, 카로틴이 있다.

작용: 열매 추출액은 동물 실험에서 오줌량을 대조에 비하여 10% 늘린다.

응용: 다른 나라 민간에서 잎이 붙은 가지를 진경약, 진정약, 수렴약, 아픔멎이약, 열물내기약, 오줌내기약으로 오줌내기장애, 마비, 신경계통 질병, 전간, 두통, 꽃돋이가 있는 질병, 설사, 간질병, 콩팥염에 쓴다.

열매는 강장약으로 쓰며 괴혈병에 차처럼 달여 먹는다.
]

시로미의 효능에 대해서 중국에서 펴낸
<중국본초도록> 제 9권 101면 4220호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암고란(巖高蘭)   

기원: 암고란과(巖高蘭科:시로미과: Empetraceae)식물인 암고란(巖高蘭=시로미: Empetrum sibiricam V. Vassil.)의 열매이다.

형태: 상록 소관목으로 땅위로 기며 자라고 높이는 20∼50cm이다.  분지는 조밀하고 홍갈색(紅褐色)이며 약간 홍백색(紅白色)을 띄는 짧은 권모(捲毛)가 있다.  잎은 어긋나고 밀집하며 선형으로 길이는 약 0.5cm이고 너비는 약 0.1cm이며 가장자리는 뒤로 말려 있다.  꽃은 자웅이주로 꽃잎이 없으며, 꽃받침잎은 3장이다. 열매는 장과(漿果)로 구형(球形)이며 어두운 자흑색(紫黑色)에서 흑색(黑色)에 이르고 직경은 0.6cm이며 안에는 종자(種子) 7∼11개가 있다.



분포: 높은 산 삼림중의 풀이 많은 빈 공간에서 자란다.  중국의 내몽고(內蒙古) 동부(東部), 대흥안령(大興安嶺) 북부(北部)에 분포한다.

채취 및 제법: 여름, 가을에 채취하여 햇볕에 말린다.

효능: 보신첨정(補腎添精), 강요건골(强腰健骨).    

주치: 병구체허(病久體虛), 요슬산연(腰膝酸軟), 양위(陽萎: 양기부족).    

용량: 하루 9∼15그램을 물로 달여서 먹는다.

참고문헌: 대흥안령약용식물(大興安嶺藥用植物) 1990. 3 ; 중국고등식물도감(中国高等植物图鉴), 제 2권, 6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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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는 해초맛이 나며 신장병을 낫게 하는 동백나무겨우살이, 진주초(여우구슬), 백화사설초, 한란, 번행초, 분단나무, 실거리나무, 자금우, 백량금, 후박나무, 주목, 구상나무, 구실잣밤나무, 순비기나무, 선인장, 예덕나무, 천선과나무, 가막살나무, 통탈목, 담팔수, 새덕이, 녹나무, 꽝꽝나무, 사스레피나무, 삐쭉이나무, 초령목(귀신나무), 참식나무, 산딸나무, 제주조릿대, 상동나무 등 온갖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중국의 도교 신자들은 자연과 하나가 되려고 시도하면서, 영원한 젊음과 활력을 얻는 데 집착하였는데, 도(道) 곧 자연의 길과 조화되게 살면 여하튼 자연의 비밀에 이르러 신체의 해, 질병, 심지어는 죽음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노자는 그런 것을 중시하지 않았지만, 「도덕경」의 문구는 그런 사상을 암시하는 듯 하다. 예를 들어, 제 16장은 이렇게 알려 준다. “도와 하나가 되는 것은 영원하다.  몸은 비록 죽더라도, 도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장자 역시 그런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데 한몫을 하였다. 예를 들면, 「장자」의 한 대화편에서 한 신화적 인물이 다른 인물에게 이렇게 질문하였다. “그대는 고령인데도 안색이 어린아이와 같구료. 어찌된 일이오?” 나중 사람이 대답하였다. "나는 도를 배웠소." 또 다른 도교 철학자에 관하여 장자는 이렇게 썼다. "이제 열자(列子)는 바람을 타고 날 수 있다. 기분 좋게 서늘한 바람을 타고 보름 동안 계속 날아갔다 돌아올 수 있다. 행복을 얻은 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은 희귀하다."

이와 같은 이야기들은 도교 신자들의 상상력에 불을 붙였다. 그들은 신체 쇠약과 죽음을 지연시켜 줄 수 있다고 하는 명상, 식사 조절, 호흡 훈련을 시험해 보기 시작하였다. 오래지 않아 구름을 타고 날고, 마음대로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며, 성스러운 산이나 외딴 섬에서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세월을 살면서 이슬이나 신비한 과일을 먹고 산다는 신선들에 관한 전설이 돌기 시작하였다. 중국 역사에 따르면 기원전 219년 진(秦) 나라 시황제가 3,000명의 소년 소녀를 일단의 배에 태워 보내서 신선들의 거처인 전설의 봉래 섬을 찾아 불로초를 가져오도록 명했다고 한다. 두말할 나위 없이, 그들은 비약을 가지고 돌아오지 못했다. 그러나 전설은 그들이 한국과 일본으로 알려지게 된 섬들에 정착했다고 알려 준다.

한라산은 옛부터 신선이 거주한다는 신령한 산으로 영주산(瀛洲山)이란 명칭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불로장생을 누리려고 중국의 진시황은 서시와 동남동녀 3000명을 보내 동쪽의 삼신산(三神山)에 가서 불로초를 구해오라고 명령하였는데, 제주도 지역에는 서시가 다녀갔다는 제주도의 정방폭포 바위에 지금도 "서불과차(徐市過此)"라는 새겨진 글씨가 남아 있어 그당시에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제주도 전체를 샅샅히 탐색한 것을 생각나게 한다. 진실로 사람이 늙지 않고 죽지 않으며 병들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에덴동산의 생명나무처럼 불로초가 제주도에 정말로 존재한단 말인가? 아직도 무지한 인간들이 자세히 관찰하지 못하고 찾지 못해서 숨어 있는 것일까? 각자가 깊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상기 자료는 약초연구가로서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각종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질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환우들에게 내고향팔도강산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을 통해서 옛조상들의 삶의 지혜를 꿰뚫어보고 팔도강산에 전해 내려오는 각종 전설과 내력을 통해서 현대를 살아가는 후손들에게 삶의 통찰력을 갖게 하고 조금이나마 기쁨과 희망을 갖게 함으로써 진정한 위로와 힘을 솟구치게 하는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정보의 목적으로 공개하는 것임을 밝혀 둔다.  

(글/ 초연구가 & 동아대 & 신라대 대체의학 외래교수 전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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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에 jdm 필자가 찍은 한라산/정방폭포/서시과차/서복전시관 사진도 감상해보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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