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 무엇인가?

효녀 심청이의 전설이 살아 숨쉬는 고장 백령도

 

 

 


▶ 서해 최북단 청정해역, 기묘하게 생긴 아름다운 절경의 바위들, 콩돌 해안, 전세계 단 2곳 중 하나인 천연비행장을 가지고 있는 신비의 섬 백령도(
)

[백령도의 연혁]


① 곡도(
鵠島): 고구려시대

② 백령진: 고려 현종 9년(1018년)

③ 경령진: 조선 세종 10년(1428년)

④ 황해도 장연군: 조선 고종 33년 이후(1896년)

⑤ 경기도 옹진군 편입: 1945년 8월 15일

⑥ 백령면 수복: 1953년 7월 27일

⑦ 백령면 대청출장소 설치: 1962년 6월 14일

⑧ 대청출장소 면승격: 1974년 7월 1일

⑨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 통합: 1995년 3월 1일

백령도 공식 홈페이지 이곳을 클릭☞
http://www.baengnyeongdo.com

[백령도 소개]


백령도
(
)인천에서 북서쪽으로 191.4km 떨어진 서해 최북단의 섬으로, 북한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다. 따오기가 흰 날개를 펼치고 공중을 날으는 모습처럼 생겼다 하여 <흰백(白), 깃령(翎), 섬도(島)> 즉 백령도()라고 한다.

"백령도는 북한과 가장 가깝게 있는 넓이 46.28 평방킬로미터 섬으로 국내에서 14번째로 큰 섬이었으나, 최근 화동과 사곶 사이를 막는 간석지 매립으로 약 100만 평이 불어나 국내에서 8번째로 큰 섬이 되었다. 이곳은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들어가려면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일단 들어가보면 자연 그대로의 섬의 매력에 빠져들고 만다. 심청이 몸을 던진 인당수가 보이며, 해삼, 전복 등 어종도 풍부하다.

또 섬 서쪽 두무진 아래 선대바위는 고려 충신 이대기가 <백령지>에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 표현 했을 만큼 기기묘묘함을 자랑한다. 더욱이 지상 2층 규모의 심청각을 건립하였으며 사곶천연비행장, 두무진 등과 연결되는 백령도 일대를 관광코스로 조성하였다. 그리고 진촌리 북쪽 해안에는 국내 유일의 물범 서식지인 물개바위가, 용기 포구 옆에는 세계에서 두 곳밖에 없는 규조토 해변(일명 사곶해안)이 있다. 길이는 자그마치 3km, 썰물 때에는 3백m 이상의 단단한 도로가 생겨 차도로 사용되고 군수송기의 이/착륙이 가능하다." [백령도 닷컴]

"
면적 45.83㎢, 인구 4,329명(1999)이다. 인천에서 북서쪽으로 191.4km 떨어진 서해 최북단의 섬으로, 북한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다. 본래 황해도 장연군(長淵郡)에 속했으나 광복 후 옹진군에 편입되었다. 원래의 이름은 곡도인데, 따오기가 흰 날개를 펼치고 공중을 날으는 모습처럼 생겼다 하여 백령도라고 한다.

처음에는 옹진반도와 이어져 있었으나 후빙기에 해면이 상승하면서 평원에 돌출되어 있던 부분이 수면 위에 남아 형성되었다. 한국에서 14번째로 큰 섬이었으나, 최근 화동과 사곶 사이를 막는 간척지 매립으로 면적이 늘어나 8번째로 큰 섬이 되었다. 1월 평균기온 -4.5℃, 8월 평균기온 25℃, 연강우량은 755.8mm이다.

진촌리 조개무지에서 신석기시대의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되어 일찍부터 이곳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볼 수 있다.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곳이며, 서해의 해금강이라 불리는 두무진과 세계에서 두 곳뿐인 사곶천연비행장으로 유명하다.

심청이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가 있으며 1999년 10월에는 2층 규모의 심청각 전시관이 준공되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심청이의 효심을 배워가기도 한다. 까나리액젓, 참다래(키위), 흑염소엑기스, 전복, 해삼, 멸치, 약쑥, 가리비, 농어, 우럭, 놀래미 등의 특산물이 있다.

관광지로도 유명하여 섬 북서쪽의 두무진은 고려시대의 충신 이대기가 《백령지》에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 표현했을 만큼 기묘한 절경을 자랑한다. 대표적인 관광코스는 백령도 선착장 → 사곶천연비행장 → 심청각 → 물개바위 → 담수호 관광 → 두무진 관광 → 콩돌해안 → 백령도 선착장이다.
" [네이버테마백과사전]

"백령도(
)

요약: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에 속하는 섬.
위치: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  
면적:  45.83㎢  
인구:  4,329명(1999년)

본문: 인천에서 북서쪽으로 191.4km 떨어진 서해 최북단의 섬으로, 북한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다. 섬의 위치는 동경 124도 53분, 북위 37도 52분에 위치한다. 북한의 장연군에서 약 10km, 장산곳에서 15km떨어져 있다. 섬의 최고봉은 해발 184m의 업죽산이며 동쪽에 145m의 남산이 있고 소쪽에는 해발 162m의 망골산이 있다. 섬의 남부에는 동쪽에 해발 130m의 이랑구미산, 중앙에 해발 114m의 매막골산, 서쪽에 해발 176m의 삼각산이 있다. 섬의 모양은 동쪽을 바라보는 ㄷ자이다. 처음에는 황해도 옹진반도와 이어져 있었으나 후빙기에 해면이 상승하면서 평원에 돌출되어 있던 부분이 수면 위에 남아 형성되었다. 1월 평균기온 -4.5℃, 8월 평균기온 25℃, 연강우량은 755.8mm이다. 면적 45.83㎢, 인구는 약 4,300명(1999)이다. 본래 황해도 장연군(長淵郡)에 속했으나 광복후 옹진군에 편입되었다. 원래의 이름은 곡도인데, 따오기가 흰 날개를 펼치고 공중을 날으는 모습처럼 생겼다 하여 백령도라고 부르게 되었다.

진촌리 조개무지(말등패총)에서 신석기시대의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되어 일찍부터 이곳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볼 수 있다. 삼국시대에 백령도를 곡도(鵠島)라고 하였으며 신라 진성여왕 때 당나라로 가던 사신이 풍랑을 만나 곡도에서 10여 일을 머물렀다고 한다. 후삼국시대에는 당나라로 통하는 중요한 해상교통의 요지였기에 백령도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해전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고려 태조 때 명장이었던 유금필 장군이 무고를 당해 곡도로 유배를 당했다. 조선 세종 때 편찬된 《고려사》에 의하면 고려는 곡도를 백령(白翎)으로 개명하고 진을 설치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1051년 백령진에 화재가 발생하여 백령진장 최성도와 부장 최숭망을 처벌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부터 백령도에 진을 설치하고 진장과 부장을 두어 군사적 요충지로 관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백령진을 설치하였고 1894년(고종 31년) 폐지되었다. 역사적으로 백령도는 고려시대부터 유배지로 이용되었다.

심청이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가 있으며 1999년 10월에는 2층 규모의 심청각 전시관이 준공되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심청이의 효심을 배워가기도 한다. 까나리액젓·참다래(키위)·흑염소엑기스·전복·해삼·멸치·약쑥·가리비·농어·우럭·놀래미 등의 특산물이 있다. 서해의 해금강이라 불리는 두무진과 세계에서 두 곳뿐인 사곶천연비행장으로 유명하다.

관광지로도 유명하여 섬 북서쪽의 두무진은 고려시대의 충신 이대기가 《백령지》에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 표현했을 만큼 기묘한 절경을 자랑한다. 대표적인 관광코스는 백령도 선착장 → 사곶천연비행장 → 심청각 → 물개바위 → 담수호 관광 → 두무진 관광 → 콩돌해안 → 백령도 선착장이다.
" [두산백과사전]

[백령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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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백령도 닷컴 ; 백령도의 전체전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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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두산백과사전 ; 서해 최북단 섬 백령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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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Copyright kaegun.com. All rights reserved. ; 백령도 위성 사진>

[백령도 명승지 및 여행지]


1,
백령도 두무진
1997년 12월 30일 명승 제8호로 지정되었다. 백령도의 북서쪽에 있는 포구로, 지정면적은 4,500,000㎡이다. 백령도의 원래 명칭은 곡도(鵠島)로, 따오기[鵠]가 흰날개를 활짝 펴고 나는 모습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연화리의 지명은 마을 앞에 연꽃이 많이 피는 연당이라는 연못이 있어서 연지동(蓮池洞)이라고 부르다가 후에 연화리로 개칭한 것이다.

두무진이라는 이름은 뾰족한 바위들이 많아 생긴 모양이 마치 머리털 같다고 하여 두모진(頭毛鎭)이라 부르다가 후에 장군머리 같은 형상이라 하여 두무진으로 개칭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곳을 산림이 울창한 곳이라 하여 두모진(頭毛津)이라고 하였으나, 러일전쟁 때 일본의 병참기지가 생긴 후로 두무진(頭武津)으로 바뀌었다고도 한다.

주로 사암과 규암으로 되어 있으며, 층리(層理)가 잘 발달하여 곳에 따라 사층리(斜層理)의 물결자국이 관찰된다. 오랫동안 파도에 의해 이루어진 병풍같이 깎아지른 듯한 해안 절벽과 가지각색의 기암괴석이 솟아 있어 금강산의 만물상과 비견되어 서해의 해금강이라 불린다.

홍도나 거제도의 해금강의 기암괴석과는 달리 층상암벽에 코끼리바위, 장군바위, 신선대, 선대바위, 형제바위 등 온갖 모양이 조각된 바위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 홍도와 부산 태종대를 합쳐 놓은 듯한 절경이다.

특히 선대바위는 1612년(광해군 5) 이대기(李大期)가 《백령도지(白翎島誌》에서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극찬했을 정도로 풍광이 빼어난 곳이다. 높이 30~40m 되는 일부 암벽에는 해국(海菊)이, 해안에는 땅채송화, 갯질경이, 갯방풍, 벌노랑이 같은 염생식물이 자라고 있으며, 큰바위 틈에서 범부채가 자라고 있다.

2, 백령도 조개더미

1958년 이후 백령도의 사회학 및 인류학적 조사가 실시되어 진촌리(鎭村里)에서 말등조개더미가 발견되었는데, 1981년에는 서울대학교 고고학과 주관으로 백령도에 대한 대대적 학술조사가 이루어져 용기부락과 말등부락에서 신석기시대의 조개더미가 발견·조사되었다.

용기조개더미는 용기포 포구에서 동으로 약 100m 떨어진 야산에 있으며, 조사 당시는 조개더미의 중심부를 포함한 대부분은 이미 유실된 상태였다. 지금 패각층(貝殼層)은 두께 약 20cm만 남았는데, 깎인 면은 대체로 남북방향으로 남아 있고 패각층 길이는 약 7.5m이다.

1m×1m의 시굴갱(試掘坑)을 파들어간 결과, 상부는 패각과 돌이 섞여서 나오고 하부의 사질(砂質) 생토층은 바로 위에서 빗살무늬토기 아가리부분 조각 2편이 나왔는데, 횡주생선뼈무늬[橫走魚骨文]이다. 이밖에 병행사단선문(竝行斜短線文)의 아가리편 1점과 민무늬토기 몸체편 등이 나왔다. 모두 굵은 사립(砂粒)을 섞은 점토질로 만들어졌으며, 토기의 앞뒷면에 다치구(多齒具)로 찰과(擦過)한 흔적이 보인다. 따라서 이 조개더미의 연대는 빗살무늬토기시대 중에서도 말기에 속한다. 석기로서는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해 사용한 흔적이 있는 돌도끼가 발견되었다.

한편, 말등조개더미는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낮은 구릉 말단부에 쌓인 패각층으로, 패각층의 두께는 60~100cm, 그 길이는 15~20m이다. 시굴 결과 토기로는 빗살무늬토기 아가리와 몸통부의 각 1편, 바닥[底部]에 가까운 2편, 민무늬토기 완형 1점과, 석기로는 긁개 2점, 간돌도끼와 갈돌, 그리고 자갈돌과 박편석기 등이 수십 점 발견되었다. 이처럼 다량의 다양한 석기가 보이는 것은 대부분의 서해 도서(島嶼)지방에서 석기가 극히 빈약하게 나오는 것과는 대조적인 현상으로, 백령도 주민이 어업 외에 수렵 및 원시농경을 하였음을 말해준다.

이밖에 진촌리 부두 근처의 해안가에서 검은색긴목항아리[黑陶長頸壺] 출토 예가 보고된 바 있고, 고려·조선시대의 기와편과 자기(磁器)편이 수습되었다. 백령도의 빗살무늬토기 조개더미는 토기의 문양과 석기들로 미루어 보아 평양 청호리(淸湖里)·금탄리(金灘里)와 해주 용당포(龍塘浦) 등의 빗살무늬토기 유적과 같은 계통으로 보이며, 시기는 신석기시대의 후기인 기원전 2000년 후반~1000년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3, 백령도 사곶의 해수욕장 및 사빈(천연비행장)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 진촌리에 있는 사곶해수욕장 겸 천연비행장으로, 1997년 12월 30일 천연기념물 제391호로 지정되었다. 사곶연안은 사빈(砂濱)으로 이루어졌으며, 면적은 해안경계부터 1㎞ 이내에 이른다. 주로 세립질 석영사(石英沙)로 이루어진 해안으로 이곳의 토양경도는 0.17∼0.39㎏/㎠이다. 또 모래퇴적층 단면은 백사장의 표토층이 2∼4㎝로 백색, 그 다음 층은 12∼19㎝ 깊이의 암회색층, 이하층은 5∼10㎝의 연갈색층, 그 다음은 10∼15㎝의 진한 갈색층이 나타난다.

부근에는 높이 10∼12m, DBH 10∼18㎝인 곰솔림이 형성되어 있다. 바닥은
주름조개풀이, 도꼬마리, 좀보리사초, 한삼덩굴 등의 군락과 돼지풀, 토끼풀, 질경이, 망초, 쑥, 명아주, 소리쟁이 등이 자라고 있다. 높이 10m 내외의 아카시아나무군락과 곰솔군락이 형성되어 있는 곳에 쑥, 화본과식물, 좀보리사초, 애기수영군락을 비롯하여 갯버들, 자귀나무, 은백양, 해당화, 멍석딸기, 갯메꽃, 여뀌, 달맞이꽃 등이 분포하고 있다.

사곶마을의 해안은 해수욕장 겸 천연비행장으로 유명한 곳으로, 썰물 때에는 거의 수평에 가깝게 평평한 모래판이 너비 200m, 길이 2㎞쯤 이어진다. 규조토로 되어 있어 콘크리트 바닥처럼 단단하다. 자동차가 다녀도 바퀴가 전혀 빠지지 않을 정도여서 비행기의 이착륙시 활주로로 이용할 수 있어 천연비행장이라고 한다.

바닷가 모래사장을 이용하는 천연비행장은 현재 전세계적으로 이곳과 더불어 이탈리아의 나폴리해안 단 두 곳뿐이다. 6·25전쟁 때에는 실제로 천연비행장으로 활용되었다. 유엔군 작전 전초기지로서의 비행장 역할을 하여 군 작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1989년 초까지 군사 통제구역으로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어 자연 그대로 잘 보존되어오다가 출입통제가 해제되어 하계 휴양지로도 유명하다.

4, 백령도 진촌리의 감람암포획현무암분포지

1997년 12월 30일 천연기념물 제393호로 지정되었다. 전체 지정면적은 6,307㎡이다. 암질로 보아 알칼리 감람석 현무암류이며, 제3기 말의 분출물이다. 현무암이 분포하는 지역에서 진촌리 마을 부근이 지형상 고도가 높은 것으로 보아 진촌리 성당 부근이 분출의 중심지로 추정되나 분출구가 확인되지 않아 분출 양식은 알 수가 없다.

해안가에서 두께가 10m 이상 되는 용암층이 관찰된다. 이 용암층 내에서는 지름 5~10㎝ 크기의 신선한 감람암((橄欖岩) 포유물이 다량 관찰된다. 현무암류는 장석반정(長石斑晶)의 유무에 따라 장석(長石)과 은정질현무암(隱晶質玄武岩)의 두 가지로 구분된다. 장석은 육안상으로 회색을 띠며 풍화면에서 중립 및 세립질(細粒質) 침상(針狀)이 많이 보인다.

은정질현무암은 흑색 또는 흑회색을 띠며 조직이 치밀하다. 주로 해안가에 분포하며 특히 초염기성암(超鹽基性岩)의 포획암(捕獲岩)과 이와 거의 크기가 유사한 알칼리 장석의 큰 결정이 산재하는 것이 특징이다. 두 용암류의 선후 관계는 야외에서 직접 확인되지 않았으나 분포상태로 보아 장석이 많이 있는 현무암류가 먼저 분출한 것으로 생각된다.

현무암류의 주요 구성 광물은 감람석, 휘석 및 사장석이다. 부구성 광물은 자철석(磁鐵石), 알칼리 장석으로 전형적인 알칼리 감람석 현무암이다.

5, 백령도 남포리의 콩돌해안

1997년 12월 30일 천연기념물 제392호로 지정되었다. 백령도의 지형과 지질의 특색을 잘 보여주는 곳으로, 해변에 둥근 자갈들로 구성된 퇴적물이 단구상 미지형(微地形)으로 발달한 해안이다.

둥근 자갈들은 백령도의 모암(母岩)인 규암이 파쇄되어 해안의 파식(波蝕) 작용에 의하여 마모를 거듭하여 형성된 잔자갈들로 콩과 같이 작은 모양을 하고 있어 콩돌이라고 한다. 둥근 자갈들은 색상이 백색·회색\·갈색·적갈색\·청회색 등의 형형색색을 띠고 있어 해안경관을 아름답게 한다.

콩돌자갈은 간조시 육지로부터 조립질(粗粒質) 자갈대, 세립질(細粒質) 자갈대 및 중립질(中粒質) 자갈대의 순으로 해안선에 평행하게 발달하여 있다. 하부층에는 모래층이 있다. 조립질 자갈대는 약 6m 내외의 너비이고, 자갈들은 지름 16∼64mm가 약 65%, 8∼12mm가 약 35%이다.

세립질 자갈대는 너비가 8m 정도이고, 자갈들은 지름 4∼9mm가 95%, 10∼19mm가 5%이다. 자갈 모양은 둥글고 표면이 잘 연마되어 있다. 중립질 자갈대는 너비가 약 10m 내외이고 바로 바닷물과 접해 있다. 중립질 자갈대의 자갈들은 지름 7∼13mm가 90%, 18∼40mm가 10%이다.

6, 백령도 물범 서식지

두무진 주변 선대람과 코끼리 바위를 지나면 천연기념물 지정, 보호받고 있는 물범이 수면에 잠길 듯 말 듯한 바위에 옹기종기 집단 서식하고 있다. 해상일주 관광을 하다보면 물범들의 노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도 있다. 점박이물범은 1982년 천연기념물 제 331호로 지정됐고 2005년부터 시행된 야생동식물보호법상의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으로 지정돼 있으며 은회색 바탕에 점무늬가 있으며 몸 길이는 160~170cm, 체중은 80~120kg 정도 달한다.

7, 심청이의 혼이 담긴- 심청각

심청이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석에 몸을 던진 인당수와 심청이 환생했다는 연봉바위 등 백령도가 심청전의 무대였던 사실을 기리기 위해 인당수와 연봉바위가 동시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 심청각을 건립하여 전통문화를 발굴, 계승함과 아울러 "효=효" 사상을 함양하고, 망향의 아픔을 가진 실향민에게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달래주며, 심청전에 관련된 판소리, 영화, 고서 등과 심청전의 내용을 극화한 모형물도 전시하고 있다.

8, 백령대교와 백령호

아주 작은 다리이지만 백령도의 유일한 교량으로써 사곶해수욕장과 이어진 해안에 방파제를 세우면서 생성된 다리와 호수이다. 이곳 방파제에서는 사곶 해변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담수호라 불리우기도 하며, 서해 최북단비가 서 있다.

9, 역사속의 중화동 교회

이 지역의 기독교 역사는 한국 기독료의 초기 단계 역사로 영국에 의해서 시도되었고, 전개된 선교의 중심지는 백령도였다.

기독교 역사관은 19세기 초부터 백령도와 그 주변지역에서 전개된 기독교의 선교역사를 모아 그 기록을 정리하고 이것을 현실감있게 전시한 서북해안 유일의 기독교 역사 기념관이다.

10, 통일 염원- 기원비/ 기원탑

통일기원비: 조국의 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두무진 포구 왼쪽 능선 위에 서 있다. 멀리 북녘땅을 바라볼 수 있어 실향민들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통일기원탑: 조국의 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객선부두인 용기포선착장 진입로에 세운 탑으로 백령도 여행시 가장 먼저 손님들을 반겨주는 광장으로써 대부분 이곳에도 백령도 여행이 시작된다. 이곳에서 남포리쪽으로 지는 석양이 일품이다.

11, 사곶 창바위/ 사자바위

창바위: 위치는 사곶해변 끝 쪽에 위치하며 백령대교 앞에 홀로 서있다. 바위 가운데 창모습 같이 뚫려있어 창바위라 부르며, 7~8월에 학꽁치 낚시를 즐길 수 있다.

사자바위: 만조시각에 보는 것이 가장 좋으며, 마치 사자 얼굴을 바로 옆 모습에서 보는 듯한 형상을 닮았다고 하여 사자바위라 불리운다. 관창동 고봉포 앞바다에 있다.

12, 코끼리 바위/ 형제 바위

코끼리바위: 두무진 절경 중에 하나로 코끼리가 물을 마시고 있는 모습과 흡사하여 코끼리바위라 불리우며 이곳은 해안유람선을 타고 나가야 볼 수 있는 장소이다. 코끼리바위 주변으로 선대암, 장군 바위, 형제바위 등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형제바위: 선대암 주변에 형성된 기암괴석으로 통일기원비에서 볼 수 있으며 해안에서도 볼 수 있다.

13, 연화정사/ 흑룡사

인천 옹진군 백령면 진촌리에 위치한 연화정사는 법당과 요사채, 2003년에 법당 뒤편 언덕에 해수관세음보살상을 세우며 여법한 사찰로 자리매김했다.

주민의 90% 이상이 타종교를 믿는, 연등조차 달지 못하던 불교의 불모지라 불리는 백령에서 제 1회 심청효축제를 개최하면서 이룬 성과로 더욱 주목받고 있다. 때문에 백령도 연화정사는 '도서(島嶼)포교'의 모범이자 1번지로 손꼽히고 있다.

14, 흑룡전차/ 패총

진촌리 패총은 구릉지대에서 해안쪽으로 유수가 흐르는 경사진 곳인 밭뚝 밑이 깍아져 내린 단에 중간부위에서 밑부분에 걸쳐 패각총의 단면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으며 패각총은 주로 굴과 섭조개 껍질로 이루어져 있고 그 주변에는 패각편과 도끼, 토기편들이 산재해 있다.

옹기포 선착장에서 진리 방향으로 도로변에 전시된 백령도 해병대의 흑룡전차를 볼 수 있다.

15, 해안 유람선

유일한 백령도 해안 절경과 비경을 볼 수 있는 장소이며, 이곳에서 해안유람선을 타고 두무진과 코끼리바위, 선대함 주변, 물개바위 및 서식지를 볼 수 있으며 기암괴석으로 형성된 백령도의 해안 절경을 바다와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16, 반공유격전적비

1950년 중공군 참전으로 1.4후퇴 당시에 이곳으로 북한의 많은 사람들이 피난하여 왔으며 1951년 2월 28일 유엔군 관할하에 8.000여명이 반공유격대를 조직하여 황해도 일원의 기습작전과 백령도 수호에 많은 전공을 세웠으므로 그 전공을 기리고 장렬히 산화한 516명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고자 건립하였다.

건립일: 1961년 8월 15일
위치: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 진촌 2리 1184번지

[백령도의 먹을 거리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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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전홍만 조부께 물려받은
<조선일람(朝鮮一覽)[朝鮮地理硏究會編, 315면, 京城 東洋大學堂, 9판, 단기 4270년, 서기 1937년]> 책에서는 1937년 당시 황해도 장연군의 인구와 풍속 등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필자가 직접 책의 원본을 사진을 찍어서 아래에 공개해 본다.


<출처: 조선일람(
朝鮮一覽); 황해도 장연군 백령면으로 분류된 "백령도">

위의 책 내용을 살펴보면 그 당시 황해도 장연군의 인구가 75.409명이 살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면수가 11개, 리 및 동이 127개이며, 특산품이 빈우(牝牛:암소), 대두황권(大豆黃卷:
갯완두이다. 갯완두에는 y-methylglutamic acid 성분이 함유되어 있으며, 어린 싹과 종자를 대두황권(大豆黃卷), 담두시(
豉) 또는 담두()라 하여 홍역, 천연두, 감기로 인한 열, 설사, 체한데, 살갗에 물집이 돋고 몸이 붓는 증세, 땀이 잘 나오지 않는 증세, 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 증세, 가슴속이 갑갑한 증세, 변비, 근육에 경련을 일으키는 증세, 뼈마디가 쑤시고 아픈 증세에 약용하고, 우황청심환의 원료식물로 사용하며, 검은 콩의 대용 약제로도 이용된다. 또한 어린 싹은 이뇨 및 해독제나 산후병에 약용한다. 동속약초로는 반들갯완두, 털갯완두가 있다.)이고, 보통산이 미(米:쌀), 맥(麥), 대두(大豆), 연초(煙草:담배), 면화(綿花:목화), 동(銅), 금(金), 녹(鹿:사슴), 장(獐:노루)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황해도 장연군의 전설에 대해 박영준씨가 쓴
<한국의 전설(韓國의 傳說)> 제 6권 "계림사의 흰닭", 제 9권 "효녀 심청", 제 9권 "신선이 바꿔준 색시", 제 3권 "만석동의 용우물"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3가지 전설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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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계림사의 흰닭=계림사(鷄林寺)의 백계(白鷄)

2,
효녀 심청(沈淸)

3,
신선이 바꿔 준 색시

4, 만석동의 용우물


(글/ 초연구가 & 동아대 & 신라대 대체의학 외래교수 전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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