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동안의 체르노빌 여행 무엇인가?

 

 

 

 

▶ A 2006년 4월호 제 14-16면

[하루 동안의 체르노빌 여행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20년 전에 발생한 사고는 전례 없는 것이었습니다. 1986년 4월 26일, 그곳에 있던 네 개의 원자로 가운데 하나가 붕괴되는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대부분의 재해는 인재든 자연재해든 간에 나중에 청소와 재건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사고로 발생한 오염은 오랫동안 나쁜 영향을 미쳐 왔습니다.

최근 몇 해 동안 해마다 5월 9일이 되면, 사고 현장에서 가까운 여러 소도시에 살던 주민들은 자신들의 버려진 예전 집들을 둘러봅니다. 때로는 친구나 친족이 동행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그곳에 가기도 합니다. 또한 과학자들은 방사능이 미친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그곳을 방문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에 우크라이나의 여행사들은 하루 동안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이 지역을 둘러보는 상품을 내놓았습니다.

2005년 6월에 「뉴욕 타임스」지는 1면 기사에서 “건강에 위험하지 않은” 단기간의 프리퍄트 “안내 관광”에 관해 언급하였습니다. 프리퍄트는 1970년대에 세워진 도시로, 인구가 4만 5000명가량이었으며 원자로에서 약 3킬로미터 떨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핵 참사가 발생한 이후로 다른 여러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살지 않습니다. 그때부터 이런 곳들은 방사능 때문에 출입이 금지되었습니다. 원자로가 붕괴된 것은, 안나 루드니크와 빅토르 루드니크가 프리퍄트에 산 지 1년 정도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그보다 크기가 훨씬 작은 체르노빌(원자력 발전소의 이름이기도 함)은 원자로에서 약 15킬로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몇 해 동안 예전 주민들은 해마다 이곳을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루드니크 가족에게는 체르노빌이 사실상 고향이어서 그들 역시 몇 해 동안 체르노빌을 방문해 왔습니다. 몇 해 전에 아내와 나는 그들과 함께 그곳을 방문하였습니다. 이제 그때 방문했던 일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우리의 우울한 휴일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예프를 떠나 2차선 도로를 타고 북쪽을 향해 갔습니다. 지나가는 작은 마을들에는 길을 따라 집들이 있고 앞마당에 튤립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으며 사람들은 밭에서 채소를 가꾸고 있었습니다. 마을들 사이에는 멀리 지평선까지 옥수수 밭이나 밀밭이나 해바라기 밭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지점에 이르자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는 것 같았습니다. 도로 표지판이 없었지만 변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길을 따라 있는 마을들에는 으스스한 적막이 감돌았습니다. 퇴락해 가는 집들은 창문이 깨져 있었고 문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습니다. 앞마당은 잡초로 가득했고 밭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습니다.

우리는 원자로로부터 30킬로미터 정도 되는 출입 통제 지역에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안나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지역 안에 있는 마을들은 방사능 수치가 높지요. 10여 개 도시와 마을에 살던 1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새집을 찾아 구소련 전역으로 이주했지요.”

우리는 계속 가서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지역에 도착하였는데, 아주 높게 쳐진 철조망이 그 안과 바깥세상을 갈라놓고 있었습니다. 근처에는 나무로 만든 초소가 있었는데, 세관의 통제 검문소처럼 생긴 그 초소에 있던 경비원들이 모든 통행인을 검문하였습니다. 경비원은 우리의 여권을 검사하고 우리 차를 등록한 다음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출입 제한 지역 안에 있게 되었습니다. 새잎이 난 나무들은 생기가 넘쳐 보였고 길 위로 푸른 가지들을 뻗고 있었습니다. 빽빽한 덤불이 숲의 바닥을 덮고 있었습니다. 나는 불탄 나무들과 시든 관목들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는데 그런 상상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앞쪽에 있는 흰 벽돌 표지판에는 이곳이 체르노빌임을 알리는 파란 글씨가 쓰여 있었습니다.

체르노빌 경계에는 약국이 있었습니다. 빅토르의 어머니는 한때 그곳에서 일했습니다. 영업시간을 써 놓은 빛바랜 표지판이 먼지가 끼여 있는 흐릿한 창문에 여전히 걸려 있었습니다. 체르노빌의 중앙 공원 근처에는 문화 센터가 서 있었습니다. 안나는 일이 끝나면 그곳에서 다른 주민들과 함께 휴식을 취하면서 다양한 예술가들의 공연을 보던 때를 회상하였습니다. 근처에는 ‘우크라이나’라는 영화관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한때 어린이들은 극심한 더위를 피해서 시원하고 편안하게 최신 영화를 보았습니다. 깜깜한 영화관에서 나오던 웃음소리는 오래전에 끊겼습니다. 안나와 빅토르는 자기들이 살던 집으로 우리를 안내했는데, 그 집은 시내 중심부에서 걸어서 금방 갈 수 있는 곳에 있었습니다. 나무들이 손질되지 않아 현관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한 줄로 서서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을 헤치고 뒷문으로 갔습니다. 뒷문에 가 보니 문은 벽에 뻥 뚫린 구멍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집 안은 완전히 황폐되어 있었습니다. 매트리스는 곰팡이가 슨 채로 녹슨 침대 틀에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벽에는 벽지 조각들이 더러운 종이 장식처럼 매달려 있었습니다. 안나는 몸을 굽혀서 방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쓰레기에서 오래된 사진 한 장을 주웠습니다. 안나는 슬픈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돌아올 때 모든 것이 꼭 예전처럼 우리를 반겼으면 하는 것이 언제나 나의 바람이었지요. 세월이 흐르면서 집이 다 망가지고 물건들이 없어진 것을 보니 정말 마음이 아프네요!”

우리는 루드니크 가족의 집을 떠나 길을 걸어갔습니다. 어느 길모퉁이에서는 사람들이 활기차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400미터쯤 걸어가니 공원의 길이 끝나고 넓고 잔잔한 강이 내려다보이는 절벽이 나왔습니다. 밤나무의 하얀 꽃들이 산들바람에 흔들거리고 있었습니다. 1986년에 이곳의 부두로 내려가는 구불구불한 계단에서는 배를 타고 피난하려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작년에 루드니크 가족은 처음으로 프리퍄트에 있는 이전 집에 갔습니다. 그들은 그때로부터 19년 전에 원자로가 붕괴된 후 그 도시에서 피난하였습니다.

회상의 시간


2006년 4월에는 핵 참사 20주년을 기념하여 여러 가지 행사를 치르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행사들이 하느님의 감독 없이는 사람이 진실한 노력을 기울여도 지구 상의 일을 성공적으로 관리할 수 없다는 엄연한 사실을 생각나게 해 줄 것입니다.

지난 9월에 이 참사를 재평가하는 과학 보고서의 결론이 발표되었습니다. 국제 연합의 위탁을 받아 작성된 그 보고서에서는 그 사고로 인해
처음에 56명이 사망하였다고 하면서 궁극적으로 방사능증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사망하는 사람은 4000명에 불과할 것이라고 예측하였습니다. 이전에 있었던 예측들에 따르면, 사망자가 대개 1만 5000명에서 3만 명 사이였습니다. 「뉴욕 타임스」 2005년 9월 8일자 사설에서는 국제 연합의 보고서가 “몇몇 환경 단체로부터 원자력 발전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성을 눈가림하려는 편향된 시도라고 공격을 받았다”라고 지적하였습니다.

빅토르는 참사가 일어난 후에 창조주에 관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우울해하지 않습니다. 신세계가 오면 이러한 끔찍한 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체르노빌 근처에 있는 우리의 소중한 집 주위의 시골 지역이 현재의 상태에서 회복되어 참으로 아름다운 낙원으로 바뀌게 될 때를 고대합니다.”

[각주]

여러 방면의 권위자들이 그러한 단기간의 방문이 안전하다고 단언하였지만, 본지는 개인이 이 지역으로 어떠한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도 권장하거나 추천하지 않는다.

본지 1997년 4월 22일호 12-15면 참조.

[16면 네모와 삽화]

처리반원들을 위한 기념물


실물보다 큰 이 기념물은 처리반원으로 알려진 체르노빌 참사의 정화 작업자들을 기리는 것이다. 이들은 불을 끄고, 연기가 나는 원자로의 잔해를 밀폐하고, 오염 물질을 제거하였다. 최종적으로 이 작업자들은 수십만 명에 이르게 되었다.
사고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사망하는 사람은 약 4000명이 될 것이며, 그 가운데 대부분은 이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15면 삽화]

체르노빌의 표지판

영화관

[15면 삽화]

루드니크 부부와 그들이 체르노빌에서 살던 집

[16면 삽화]

원자로 붕괴가 일어난 발전소, 프리퍄트에 있던 루드니크 가족의 아파트(삽입 사진)에서 약 3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
]

상기 자료는 약초연구가로서 지구상에 존재하는 천연물질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지구의 생태계에 대한 최신 정보를 지구 가족 모두가 함께 공유함으로 환경파괴를 멀리하고 자연그대로의 모습으로 원상복구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유기농법으로 생산하려는 전세계의 농민, 어민, 임업인, 수산민들에게 희망을 주며 인류의 영원한 거처인 우주의 홍일점 지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정보의 목적으로 공개하는 것임을 밝혀 둔다.

(글모음/ 약초연구가 & 동아대 & 신라대 대체의학 외래교수 전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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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살리며 생명을 살리는 유기농과 친환경 및 각종 오염, 화학 약품의 피해 자료 모음도 함께 참조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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